brunch

매거진 과거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iiii Aug 16. 2018

엄마와 본 영화들


  휴가철에 엄마와 <어느 가족>을 보았다. 옆자리에 앉은 엄마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단잠에 빠져 들었다. 아, 조금 위험하긴 했다. 엄마와 이 영화를 보기에는. 그래도 나름 생각해서 고른 건데, 또 엄마가 자는 결과를 맞이했다. 물론 엄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초반에 한쪽으로 숙여있던 얼굴은 영화가 중반에 다다르자 정면을 향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보긴 했나 보다. 조금 안심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엄마는 초반에만 잤지, 나중에는 자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엄마, 내가 같이 보자고 하는 영화는 재미없지?' '아니야. 나름대로 재미있어.' 



  온 가족이 영화관으로 첫나들이를 간 기억은 내가 중학생 때이다. 아빠가 아는 지인에게 표를 받아 사촌들까지 합류해 해리포터를 보러 갔다. 엄마는 뱀이 나오는 장면에서 질겁하다가 이내 곯아떨어졌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동시에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끄러웠다. 영화관에서의 첫 기억이다. 그 후로 소위 한국영화의 황금기라고 하는 시절이 찾아왔다. <괴물>이나 <태극기를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영화들이 등장했고 우리 가족은 덥고 짧은 팔월의 휴가를 영화관에서 보내곤 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한 보기 드문 영화들에 엄마는 재미를 붙였다. 가족 단위를 타깃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볼 때, 엄마의 코골이를 들은 기억은 없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크리스 콜럼버스, 2001

 

  대학에 가고 나서 나에게 영화 취향이 생겨버렸다. 취향과 함께 영화의 관람 행태도 달라졌다.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 성가시기 시작했다. 나는 주위에 신경 쓸 만한 대상 없이 홀로 영화 보는 것을 즐겼다. 유일하게 가족 모두가 참가하는 여가활동은 영화 관람이었다. 가끔 저녁자리에 온 가족이 모이게 되면 아빠는 몇 년 만에 다 함께 모이느냐는 거냐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이라도 할 생각으로 영화라도 보자고 코스처럼 물어봤다. 엄마와 아빠의 관심사는 최근 입에 오르내리는 핫한 한국영화였다. 보고 싶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가족이 선택한 영화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는 항상 어긋났다. 같이 영화관에 도착해 각자 원하는 영화를 보고 나왔다. 각자라는 말은 허울일 뿐, 언제나 나만 다른 영화를 보고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그래서 그거 재미있었어?' 뿐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딸이 보는 영화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는 애가 무슨 영화를 보나 하는 호기심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딱히 원하는 영화가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혹은 나와는 다르게 '딸이 보고 싶다는 영화인데 같이 볼 수 있지.'라는 애정 섞인 마음이었을지도. 그래서 가끔 같이 <문라이트>나 <도희야>와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아, 싫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그런 기색을 비췄던 엄마와는 다르게 아빠는 나름대로 영화를 이해하려 했다. '굉장히 예술적인 영화네.'라고 겉치레로 그저 할 수 있는 말을 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엄마보다 아빠와의 대화를 더 즐거워했다. 아빠는 엄마보다는 더 섬세했고 덜 예민했다. 가끔 아빠가 엄마에게 '그것도 몰라?'라고 말할 때가 있었다. 물론 장난기가 다분히 섞인 말로, 엄마를 면박 주려던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보았던 이 광경은 나에게 별로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의 직장생활을 거쳐 결혼을 한 엄마가 줄곧 공무원의 월급을 부업으로 채워나가다 한국방송통신대학을 가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팔 벌려 환영했다. 나와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그것은 일정한 월급으로 살림을 일궈내야 했던 세월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에게 여가란 교회밖에 없었는데 그런 엄마가 교육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진학의 이유가 다른 경제적인 일의 도모였을지라도. 



  언젠가 우연히 다르덴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엄마랑 보았다. 휴일, 영화를 보러 나간다는 나를 엄마가 쫓아 나왔다. '그런데 엄마 이거 재미없을지도 몰라.' 넌지시 경고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날의 엄마는 영화에 굉장히 집중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생각에 빠져있는 듯했다. 산드라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 보았다. 엄마는 내가 양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자신이 그녀처럼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다. 엄마가 나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만하게 엄마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내일을 위한 시간(Two Days One Night)>,  장 뤽 다르덴, 2014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엄마와 보았다. 정말 엄마랑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영화를 보러 나간다고 하자 엄마가 또 따라나섰다. '엄마, 이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야.' 나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또 경고를 했다. '응, 알았어.' 하고 말했지만 불안했다. 엄마와 홍상수 영화라니. 극 중의 정재영이 술에 취해 바지를 벗을 때, 엄마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었지만 엄마의 눈치를 내내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김민희는 저러고 나와도 이쁘네.' 뿐이었다. 


  그 이후로 엄마와 극장 데이트를 준비할 때의 영화에 많은 조건들이 붙었다. 무섭거나 징그러운 것 제외, 폭력적인 것 제외, 선정적이지 않더라도 뉘앙스가 야하면 불편하니 제외. 이렇게 한없이 제외하고도 내게 흥미를 끌만한 영화를 골라야 했다. 교집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빠의 일이 일어나고 나서 엄마도 나도 침체되어 있었다.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엄마에게 립스틱을 선물했다. 그리고 아빠를 보러 다녀오는 길에 영화를 한 편 보자고 제안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곁에 있던 사람의 부재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마침 <원더풀 라이프>가 재개봉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엄마와 함께 조그만 영화관으로 향했다. 집을 벗어난 모처럼의 다른 공간이었다.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나와 엄마에게 위안이 되길 바랐다. 엄마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스크린을 말똥히 쳐다보았다. 곧, 고개 한쪽이 푹하고 꺾였다. 엄마는 극장 안에서 잠이 들었다. 자는 모습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다행이다. 잘 자는구나. 


  어느 날, 엄마는 문득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엄마에게 이 영화가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엄마가 슬픔에 더 잠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특정 영화를 콕 집어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커다란 상영관의 많은 인파 가운데 두 좌석을 차지했다. 다행히 마냥 슬픈 영화는 아니었다. 엄마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스크린을 마주했다. 엄마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는지는 모른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첩에서 보았던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엄마와 아빠의 연애시절 사진이 떠올랐다. 분홍색 티셔츠와 흰 바지를 입은 엄마와 하늘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산기슭 바위에 앉아 웃고 있는 아빠의 앳된 표정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Be With You)>, 이장훈, 2017  



  지금까지 엄마와 지낸 시간보다 더없이 많은 시간을 엄마와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와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기껏 하는 일이란 같이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살림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끔 휴일에 쇼핑을 가거나 영화를 보는 정도. 엄마와 본 영화들이 쌓여 갈 쯤, 아빠와 단 둘이 영화관에 갔던 것이 기억났다. 영화 제목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해보니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일본 영화였다. 저 멀리 캄캄하게 파묻혀 있던 시간들이 덮쳐왔다. 입시를 준비하다 수시에 떨어졌던 날이었다. 굉장한 압박감을 갖고 있었던 터라 탈락 소식을 듣고 옷장으로 숨어 들어갔다. 낙담해있는 나를 아빠가 영화라도 보자면서 끌고 나왔다. 예민한 고등학생 딸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아빠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찾은 방식은 영화였다. 아빠가 나에게 해준 말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아빠와 극장에 앉아있었던 시간만이 나에게 남았다. 사람도 별로 없는 붉은색의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것. 영화가 끝났다. 아빠와 가만히 밤길을 되돌아왔다. 


  어제 엄마와 외출을 했다. 엄마는 광복절 특집으로 티비에서 <동주>를 상영한다는 기사를 뒤늦게 보고, '에이, 집에서 동주나 볼걸.' 하면서 아쉬워했다. '동주가 그렇게 보고 싶어? 이따 저녁에 다운받아줄게. 집에 가서 보면 되지.'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그렇지, 둘 다 잊어버리고 콜콜 잤다. 티비 드라마를 틀어놓고 그 소리가 무색하게 잠든 엄마의 얼굴을 보면 가끔 의문이 든다. 엄마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영화를 보다 자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닐까? 


<원더풀 라이프(Wonderful Life)>,  고레에다 히로카즈, 1998






<어느 가족(Shoplifters)>,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8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cerer's Stone)>, 크리스 콜럼버스, 2001

<내일을 위한 시간(Two Days One Night)>,  장 뤽 다르덴, 2014

<원더풀 라이프(Wonderful Life)>,  고레에다 히로카즈, 1998

<지금 만나러 갑니다(Be With You)>, 이장훈, 2017

<아르헨티나 할머니(Arugentin Baba)>, 나가오 나오키, 2007

매거진의 이전글 놀이터 흙무덤에서 호박을 주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