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반려견 #방송 #미디어 #프랑스 #민주주의 #사회변혁 #언론
내가 스물다섯살이던 1995년, 홍세화 선생님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었다. 그 책에 어떤 프랑스 사람이 우리나라가 개고기를 먹어서 비인간적이라고 하자, 선생님께서 '당신들처럼 개와 사람이 사는게 인간적이냐, 우리나라처럼 사람과 사람이 사는게 더 인간적이냐' 되물었다. 그들이 식문화로 비인간성을 논할 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얼마전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프렌치 스프'라는 영화에 송아지로 요리하는 음식이 있었다. 태어난지 3~4개월이면 도살 하는데 주인공과 식도락들이 사육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왈츠처럼 우아한 느낌의 요리 과정을 담았다고 평을 받아 2023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송아지는 암수를 교미시켜 낳지 않는다. 사람이 암소의 질에 손을 넣어 인공 수정을 시킨다. 어떤 동물복지 다큐멘터리 감독은 강간과 뭐가 다르냐고 부르짖었다. 세계동물보건기구의 '위생안전' 기준에 보면 깨끗하게 사육되고 도살된다. 그러면 무엇이든 사육하고 도축해도 되는 것일까.
식문화로 야만성을 논하기 전에 어떤 것이 더 인간적인 모습일까. 지금은 프랑스를 앞지를만큼 유모차에 아이들보다 개가 더 많아졌다. 아이가 앉아 있으면 힐끔힐끔 보다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재력이 느껴지는 엿보게 된다.
지난주 아이 초등학교때 친했던 학부모들끼리 만났다. 한 엄마가 고등학교 국어선생인데 올해 두 명의 아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한 명은 화장실에서 한 명은 집에서 했다. 그중 한 명은 입학식 때 전교 1등으로 들어와서 선서를 했던 학생이라고 한다. 사인은 성적 비관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사무실로 썼던 건물이 영어와 수학 학원등이 밀집돼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학원가는 시간과 몰리면 탈 수 없어 계단으로 오르락 내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까지 밤 10시가 돼야 귀가를 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 학교를 파하면 동네 아이들과 산하를 뛰어 다니며 즐겁게 놀았다. 방학을 하면 개학날이 기다려지고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삼각김밥을 입에 물고 책가방과 학원 가방을 든 모습을 보니 성인이 됐을 때 회사 출근하는 모습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와 인간의 싸움으로 불리는 스페인의 소 싸움에서 성난 황소는 빨간 망토만 보지 무기를 든 투우사는 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동물복지에 대한 논쟁 거리를 던져 놓는 동안 서너살때부터 밤 열시가 넘도록 학원 숙제를 하는 아동학대는 무뎌진다. 종일 뛰어놀지 못한 경험은 성인이 돼서 일만 하다 죽은 택배 노동자가 오버랩된다.
매일 11시간씩 일하는 것과 매일 11시간씩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우리에게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외신은 어디에 간 것일까. 3년뒤면 보신탕 식용이 금지된다. 반려견보다 못한 아이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복지, 인권이 실종됐다. 프랑스 사람들과 비인간성을 논하던게 무의미해 졌다.
언론이 보신탕 혐오라는 빨간 망토를 흔드는 동안 공부하다 죽고, 일하다 죽는 진짜 '비인간적' 인 것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 병인양요때 우리나라 문화재를 프랑스가 약탈해 간 행위는 야만이 아니냐고 했을때 너희들이 '보호하지 못해서 프랑스가 한 것'이라고 했다. 장물을 전시해 놓은 프랑스 박물관이나 영국 대영제국 박물관이 입장료로 떼돈을 버는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한 깨진 도자기나 기왓장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빨간 망토가 곳곳에 나부끼는 듯 하다.
동물복지 보다 못한 비인간적인 모습의 빨간망토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그냥 폭력이라고 하지 않고 '데이트 폭력, 교제 폭력'이라고 자극한다. 사람이 사람을 두렵게 한다. 접촉과 호기심을 불안감으로 변질시켰다. 서로 사랑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예쁜 만남과 교제가 더 많다.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더 많다.
먼 나라 사람들의 불쾌감을 부각하는 뉴스와 마약하고 부정을 저지른 연예인들 기사를 소모하는 시간에 가까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책 읽고 글쓰며 산책을 하는게 검을 든 투우사를 기운빠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홍세화 선생님이 자신있게 말하신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을 다시 되찾아 갈 수 있지 않을까. 가을의 가운데 가장 높고 넓은 날 보름달을 보며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