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아이들을 대신한 걸음
물을 구하기 위해 하루 평균 6km를 걷는 아이들의 걸음을 대신해서 우리가 그 거리를 걷거나 뛰고, 깨끗한 물을 후원해주는 캠페인이 ‘global 6k for water’다. 그중에서도 6K의 꽃으로 불리는 것이 ‘제리캔 챌린지’인데, 아이들이 물을 퍼담는 물통인 ‘제리캔’ 혹은 물병을 우리도 직접 들고 길에 나서는 것이다. 나는 매해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했었고, 행사 당일에는 제리캔을 들고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분들에게 큰 박수와 응원을 전하는 진행을 했지만 정작 제리캔 챌린지에 직접 참여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작은 물통 하나 들고뛴다는 것이 이렇게나 다른 경험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 작은 물통 하나가 어찌나 거슬리고 무겁게 느껴지는지, 자꾸만 물통은 어딘가에 버려두고 가벼워지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 물이 오늘 우리 가족들이 마실 유일한 물이라면 그 무게를 차마 덜어낼 수 없을 것이다. 어쩐지 마음 한편이 물병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절반 이상을 지나니 이제는 그 물통을 열어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이 일었다. 캠페인의 본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 혹은 양심과 한 모금만 마시고 가자는 욕구의 경계 사이에서 나는 크게 갈등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걷기에 가장 좋은 신발을 신고, 햇볕을 피하기 위한 모자를 쓰고, 피부 보호를 위해 SPF50의 선크림까지 잘 바르고 나와서도 이 한 모금 앞에서 흔들린다는 점이 참으로 철없는 행동이라 스스로가 불편했다. 기껏 하루, 한 번을 체험하는 것조차 이토록 유난스럽다는 것이 거북했다.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체험해보고, 그제야 공감하며 이해한다면 내가 품게 될 감정이 고마움일까? 수치스럽고 괴롭진 않을까. 이렇게라도 겪어봐야 아주 조금 깨닫게 되는 사람인지라 기를 쓰며 배워보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은 결코 나의 챌린지를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뿌듯함을 느낄 자격이 없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연하게 무지한 것보단, 얼굴을 붉히며 배우는 편이 낫다. 그래야 진정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하며 그 길을 눌러 걸었다. 모든 걸음을 다 마친 뒤 뜨겁게 익은 얼굴은 찬 바람에도 쉬이 식지 않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날의 두 볼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