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치마에 실밥이 하나 풀렸는데 그 시작을 기점으로 점점 올이 나가더니 치파오처럼 다소 과감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치마를 입고 달리거나 계단을 두 칸씩 오르던 과감한 행보가 의상과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선할 치마 두 벌을 들고 동네 수선집과 세탁소를 찾았는데 저녁 6시는 새로운 옷을 작업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었나 보다. 두 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다른 곳을 찾는 발걸음이 내심 서운했다. 재봉틀로 몇 번 드르륵 하면 되는데 요걸 안 해주시다니 하는 맘으로.
그러다 세 번째 수선집에서 가까스로 옷을 맡길 수 있었다. 이곳저곳을 꼼꼼히 보시더니 올이 나간 부분을 뜯어내고 같은 색의 천을 대고, 다리미질을 몇 번 하시다가 재봉틀로 드르륵 박으셨다. 내가 생각했던 간단한 드르륵이 아니었다. 내 눈에는 순식간에 끝날 간단한 작업으로 보였지만, 숙련자의 눈에는 신경 쓸 부분이 여럿 보이는 그래서 더욱 튼튼히 만져야 할 작업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전 두 수선집의 사장님들도 이미 그 작업을 예상하셨기에 시간이 없다고 하셨던 게 아닐까.
내 기준에 맞춰서 이해하면 세상은 참 치사하고 서운하고 야속한 것투성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천천히 들여다보지 못한 채로는. 그러나 조금만 살피면 그래야만 했던,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상황을 알고 나면 전처럼 서운할 수도 무턱대고 야속할 수도 없다. 이해되기 전과 후의 세상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고, 잘 모르는 타인을 쉽게 미워하지 말고 믿어보자고 생각을 했다. 누구나 이유 없는 악의로 세상을 대하지 않을 테니까. 이유를 전해줄 여유가 부족했을 뿐이니까. 잘은 모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의 틈을 늘 마련해두자고. 그럼 언제든 그 틈으로 이해가 스며들 수 있으니까.
수선을 다 마치고 나오니, 이전의 수선집 사장님들이 이해가 되어 죄송했고 늦은 시간에 옷을 수선해준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사장님께서는 작게 갈라졌던 내 마음도 꼼꼼히 수선해주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