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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Aug 02. 2019

점쟁이와 운명

그리고 나비효과

나는 언제, 누구와 결혼하게 될까?



내가 앞으로 하는 일은 잘 될까?




미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점쟁이 또는 무당이다. 점 보러 온 사람이 채 앉기도 전에 ‘어깨에 두 놈 붙었다!’ 같은 말을 하며 그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대개 초면에 반말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근데 또 반말을 해 줘야 말에 신빙성이 생기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정말 귀신이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나. 신기하다. 정말 뭔가 보이는 걸까? 그들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으나, 유난히 잘 맞추는 사람은 ‘용하다’고 한다. 용한 점쟁이의 집 앞에는 사람들이 점을 보려고 줄줄이 서서 기다린다.




이런 점쟁이들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물쩡’ 물어보고 ‘두리뭉실’ 대답하는 그들의 태도를 지적한다. 당연히 무슨 일이 있으니 오지 않았겠나. 어느 상황에서나 끼워 맞출 수 있는 첫 질문을 ‘어물쩡’ 던지면서 단서를 파악해 ‘두리뭉실’하게 대답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조상신이 노했다’ 같은 레퍼토리다. 점을 보러 들어오는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을 읽어내고 그의 상황을 유추해 대화를 이어나가자면, 프로 갬블러 수준의 집중력과 관찰력이 필요한 일이겠다.




정말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점쟁이가 있을까? 있다고 해 보자. 돌팔이나 선무당은 논외로 하자. 하지만 정말로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서 확실하고 명확한 이야기보다는 아마 두리뭉실한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남자 A와 여자 B. 10년을 친구로 살아왔으며 서로를 이성으로 본 적은 없는 사이다. 이들은 2달 후에 있을 대학교 MT에서 우연한 계기로 서로에게 반하게 되고, 다음 해 결혼할 운명이라고 하자.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생긴다. 여자 B가 점쟁이를 찾아간 것이다. “저는 언제 결혼하게 될까요?” 점쟁이가 대답한다. “내년에 하게 될 거야”. 오 놀랍다. 점쟁이가 B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다.




놀란 B는 생각한다. 지금 마음에 드는 남자도 없는데 내년에 결혼을 하게 된다고? 만나자마자 결혼하게 될 게 아니라면 올해 안에 남자가 생길 모양인데, 누굴까? 설마 나는 마음에도 없는데,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같은 과 C와 무슨 일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니야? 아니야 그건 싫어. B는 가려고 마음먹었던 대학교 MT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해. B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아까운 내 돈. 근데 점쟁이가 틀렸나? 아니다. 정확했다. 하지만 점쟁이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그녀의 운명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를 자살적 예언이라 한다. 어떤 예언이 인간의 의식에 개입해 원래의 결과와 반대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B가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점쟁이가 B의 운명이 바뀌지 않게끔 두리뭉실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상황이 이러니 점쟁이들 입장에서도 굉장히 난처하겠다.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그걸 그대로 말할 수가 없으니. 용한 점쟁이에게 있어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과 더불어 그 운명이 바뀌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서 두리뭉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 덕목이겠다.




문득, 무서워진다. 어설픈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내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꼭 점쟁이의 말 한마디만 그런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직장 상사의 어떤 행동 하나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내 인생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점쟁이는 내 미래를 알려 주는 사람인지, ‘용한 점쟁이’라는 가면을 쓰고 내 운명을 바꾸려 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결국, 점쟁이에게 미래를 물어보려거든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려는 찰나. 그런데 점쟁이의 예언이 원래의 내 운명을 건드렸는지 그대로 두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운명을 바꿔놓았다 해도 ‘원래의 운명’과 ‘바뀌어버린 운명’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는 또 어떻게 알겠나.




와. 너무 머리 아프다. 전국의 ‘용한 점쟁이’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나, 나는 이런 거 모르고 사는 게 속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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