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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Aug 11. 2019

식당 종업원에게 감사해야 하나?

어차피 자기 돈 벌려고 하는 건데

뭐가 고마워
다 돈 받고 하는 건데




몇 년 전 고깃집에서 일할 때, 고기를 가져다 주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며느리를 타박하며 어떤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다소 기분이 상할 법도 한 말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 하는 내내 자꾸 그 말을 생각하게 되었다. 언뜻 듣기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음식을 날라주고 그 대가를 받는다. 그리고 나도 내 돈 벌자고 하는 일이지 손님들 좋으라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데 사용하는 노트북. 가볍고 이쁘고 좋다. 이 노트북을 개발하고 만들어 낸 사람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실 그들도 봉사하려고 이걸 만든 건 아니다. 최대한 가볍고 이쁘고 좋게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자기들이 돈을 많이 번다. 개개인의 욕심이 세상을 발전시킨다.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그럼 여기에 '감사'가 개입할 여지는 없나? '고맙다'는 말은 언제 해야 하는 걸까.




고깃집에서 서빙하는 사람, 좋은 노트북을 만든 사람에게도 '고맙다' 말해도 될 것 같은데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일단 '고맙다고 해야 한다'는 결론부터 정해 놓고 '이러이러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를 지켜주는 군인, 경찰, 소방관들은 제일 쉬운 케이스다. 이들에게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고마워해도 될 것 같다. 이분들도 월급 받으면서 일하긴 한다. 하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노트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과 달리 이 분들은 '생계 수단'으로서만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대사처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한다. 위기에 처한 나를 도와준 경찰이 있다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분들처럼 눈에 보이게 남에게 봉사하는 경우가 아니면 왜 고마워해야 할까.




좋은 노트북을 만들어 판 사람. 어쩌면 '좋은 노트북을 만들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경찰 아저씨처럼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한 일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걸로 인해 막대한 돈을 벌었다 해도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 돈을 많이 버는 게 죄도 아니니까.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무언가를 받은 쪽에서 하는 말이다. 좋은 노트북을 내가 쓰게 되어 참 고맙긴 한데 이 사람이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이걸 만든 건지, 자기 돈 많이 벌려고 이걸 만든 건지 알 수가 없으니 고마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고민이 되겠다.




무언가 확실히 정하려면 예외가 없어야 한다. '가루는 물에 녹는 것'이라고 정의하려면 모든 가루가 물에 녹아야 한다. 미숫가루는 녹는데 쇳가루는 안 녹는다면 '가루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고마워해야 한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했는지에 구속받지 않아야 하겠다. 이 문제를 한참 고민하다가, 다소 오글거리는 결론을 하나 도출해냈다.




지구에 인구가 100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60억이 넘는 인구가 사는 지구에 비해 생활환경이 굉장히 조악하지 않을까? 노트북, 핸드폰을 비롯해 지금 누리고 있는 대다수의 첨단 인프라는 아마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일부 천재들이 획기적인 물건들을 만들어 내기야 했겠지만, 어디 60억 인구에 비할까. 돈을 받고 무언가를 한 거니까 고맙다 안 고맙다를 논하기 이전에 애초에 '무언가' 자체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지구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사니까 누군가는 플라스틱을 만들고 배와 비행기를 이용해 물건을 나르고 누군가는 반도체를 만들고 액정을 만들고 또 그걸 조립을 하고 그런 상상도 못 할 많은 과정을 통해 한 대의 노트북이 나오는 것 아닌가. '나는 돈 냈으니까'라고 말하기에 앞서, 그 많은 과정에 참여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즉 내가 내린 결론은 '타인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다. '타인'이 없었다면 내가 돈이 얼마가 있든, 내가 어떤 가치를 창출해 내든 상관없이 그 어떤 서비스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감사하는 마음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감사하려고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자기 돈 벌려고 하는 것이든 아니든, 내가 편하게 식사할 수 있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식당 종업원들의 존재 자체에 감사한다. 노트북을 만든 분들도, 경찰 소방관 분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도, 생각난 김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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