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한 장면 그리고 한 사람
책을 읽다가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읽은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책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는데,
몇 년 지나고 나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면
책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형광펜을 칠해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번 읽은 책을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다시 처음부터
전부 읽기는 어려우니까
책을 펼쳐 형광펜이 칠해진 부분만
빠르게 훑으면서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독서를 하다 보니 책 한 권을 읽어서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이 책은 성공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코스모스] , 칼 세이건
책의 본문 내용이 아니라 서문을 가져와서
조금 웃기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 문장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무언가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말은 아닐지라도
단지 저렇게 아름답게 말을 할 수 있구나
그랜드 캐니언 같은 장엄한 자연경관을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도 그 자체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칼 세이건의 간결한 한 문장에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천문학자가 써낼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한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도
정말 마음에 드는 대사 한 줄, 한 장면만 보아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이 난무하고 다 때려 부수는
전형적인 액션 코미디 영화이지만
저는 이 장면과 이 대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봄의 정원으로 오라]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멋지고 유쾌하게 할 수도 있구나
두고두고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마음에 꽂히는 ‘단 하나’를 찾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삶에도 그 공식을
대입하고 있었습니다
한평생 살면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이라도 멋지게 이루어 낸다면,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가 소중하고 강렬한 사람이 된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단 한 문장을 써 내기 위해서,
단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