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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Feb 03. 2021

37. 자궁적출 후 아침형 인간이 되다.

방학이 되니 아침 수업이 많아졌다. 돈 버는 건 엄청 좋은 일이다만 아, 이 추운 겨울날 이불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이 기분. 다들 그렇지 않을까? 나만 그런 겁니까! 여하튼 최근 목요일을 빼곤 주 6일, 아침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다. 그런데 참 요상한 일인 게 예전에 비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해졌달까. 좀 편해진 느낌이 든다. 나처럼 잠 많고 체력이 바닥인 인간이 아침에 벌떡벌떡 잘 일어나게 되다니! 마치 아침형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에 내가 늘 피곤해했던 주 이유는 자궁 속 혹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100퍼센트 혹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분명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자궁적출 전까지 나는 여러 개의 혹들과 자궁내막증 때문에 생리 전 증후군 및 생리통도 심했고 두통, 소화불량 등 각종 잔병을 달고 살았었는데 아침에 잠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것은 결코 싶지 않은 고난도 미션이었던 것 같다. 근데 자궁을 적출하고 나니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잔병이 사라졌다. 일단 자궁이 없으니 생리 전 증후군이나 생리통이 사라졌다. (물론 난소 하나는 살아있어서인지 살짝 붓는다던가 졸리다던가 아님 분비물이 좀 나오는 정도의 증상은 있다. 그리고 배도 아주 살짝 아픈데 예전에 비하면 1퍼센트 정도의 통증) 매일 있다시피 했던 두통과 소화불량도 사라지니 진통제나 소화제를 상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이렇게 각종 통증이 사라지니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해지는 기분도 든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산뜻한 기분이다.


뒤늦게 내 자궁적출 소식을 들은 내 지인은 가슴이 문드러질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내가 몹시 안쓰러웠다고 한다. 여자로서의 상실감을 어찌 극복할지 걱정이라며 좋은 생각 많이 하고 같이 이겨내 보자고. 자주 연락하고 곁에서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근데 직접 만난 후 내가 너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곱게 꾸미고 신나게 잘 지내는 걸 보시던 많이 당황스러워하셨다.


괜찮아? 억지로 참지 마. 속상하면 울어도 되니까 다 얘기해.


엥? 뭘 얘기해. ㅎ


저 정말 건강한데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저 걷는 거 보셨죠? 파워 워킹하는 거 같지 않아요?


이렇게 대답하니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참 재미있다. ㅎ. 잔뜩 상심하고 우울한 나를 기대하셨을 텐데 참 죄송스러웠다.


자의든 타의든 많은 여자들이 자궁적출을 경험했거나 경험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자궁적출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나온다.

병원 의사가 쓴 듯한 칼럼을 읽어봐도 자궁적출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으니 그런 것들을 시도해보라고 한다. 무지 비싸긴 하지만. ㅎ 자궁질환의 치료에는 한 가지 정답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근거가 정립된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한다는 것. 이 말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답이다. 환자마다 잘 맞는 치료법이 있겠지, 안 그래!


난 그 치료법 중 자궁적출이라는 걸 선택한 것뿐.

이제 근종이 자랄 자궁이 없으니 재발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수술 시 난소는 남겨두기 때문에 여성호르몬 분비도 큰 문제가 없지. 근데 이렇게 아침이 가뿐해졌으니 이것에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 자궁적출을 고민하신다면 이렇게 좋은 후기도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늦잠꾸러기가 좀 부지런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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