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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Feb 13. 2021

38. 흉터, 내 인생의 새로운 훈장

자궁적출 수술 후.

5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끔찍했던 의료사고와 재수술의 악몽이 언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무심하게도 희미해질 만큼 일상에 잘 적응하고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다. 마치 무서운 영화 한 편이나 본 듯,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 남 얘기를 들은 것처럼 정말 아득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래야 편할 것 같아 내 스스로 그렇게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지난 첫사랑 같은 나의 자궁적출 수술에 기억은 불현듯 찾아오는 간지러움 때문에 그 날을 떠오르게 한다. 왜 간지럽냐고? 수술 흉터 부위가 엄청 근질거리는데 낸들 아나?


내 배에는 흉터 4개 있다. 배꼽에 세로로 2cm쯤 길게 난 흉터, 배꼽 양 옆으로 좌우 8cm에 위치한 1cm가량에 가로 흉터 2개, 팬티를 입으면 안 보이는 위치에 있는 15cm가량의 가로 흉터.


실물을 보여줄 수 없지만 이게 꽤 볼만하다. 결코 가벼운 수술이 아님을 알만한 흉터 자국이 꽤나 흉측하달까. 배꼽티 입고 다닐 꽃처녀도 아니다만 샤워할 때면 내 배를 유심히 살펴보고 간혹 속이 상하긴 하더라. 왜 이렇게 못생기게 꼬매 놓았는지 벌건 흉터 자국이 나를 거슬리게 한다. 또 왜 이렇게 자주 간지러운 건지, 흉터 근처가 근질근질한데  벅벅 긁고 싶어도 혹시나 상처나 덧나거나 더 큰 흉이 생길까 근처만 깔짝깔짝 긁어주고 만다.


의외로 이 흉터에 민감한 사람은 내가 아닌, 우리 집 아저씨였는데 해외직구로 흉터연고를 사주고 잘 바르는지 확인하는 걸 보면 내 흉터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얘기하길 수술 후 남편이 잠자리를 꺼리지 않느냐던가 몸에 난 흉터를 보고 징그러워하지 않냐는데 처음에는 그런 말에 자격지심이 들어서인지 남편의 호의를 곡해한 적도 있다.


이제 흠집난 내 몸뚱이가 싫다는 건가. 매끈한 내 배때기가 좋았던 거야! 그래서 흉터 지우라고 이딴 거 사주는 거냐고?


물론 흉터가 예쁘진 않겠지. 그러나 이런 흉터가 내 자존감을 망치는 요인이 되게 할 순 없었다. 붉은 지렁이 같은 흉터일지라도 내가 지금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지 배때기에 있는 몇 줄의 상처는 어쩌면 내 인생의 명예로운 훈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그간의 마음속 안개가 걷히며 남편의 마음 씀씀이를 오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수술을 받게 된다면 의사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다.


선생님, 좀 예쁘게 꼬매 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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