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응급실 및 입원과 연애 이야기
새로운 식당에서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하고 하루 뒤, 아는 언니와 술을 마시고 어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숙취가 왔다. 그러나 평소 다른 점은 목구멍이 미친 듯이 아파서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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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건 영상으로 보자. 하도 많이 말하고 다녔더니 이젠 쓰는 것조차 지겹다.
https://youtu.be/qOnYjFirAyA?si=oZDKYWzXXucKkk8e
중요한 건 밴쿠버가 매우 건조해서 기관지 쪽에 문제 안 생긴 사람을 못 봤으니 꼭 가습기를 챙겨가길! + 비타민 D도 필수
실은 입원이나 일 구하는 이야기보단 연애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었다. 아팠던 썰은 이미 이야기할 만큼 한 느낌이라 더 이상 이야기하기엔 조금 지루한 감이 있다. 4월 즈음되자 점점 나도 1월에 새로 만난 사람들처럼 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일도 적응해 감과 동시에 그칠 기미가 절대 안 보이는 비는 계속해서 우울감을 불러왔고 아직도 내 인간관계에 남아있던 징징이들도 슬슬 내 기분에 관여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환경이 바뀌는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도 물론 있겠지만 그 새로운 환경이 내 운명을 바뀔 만큼의 사람을 만나게 해 줄 거라는 기대는 이미 한국에서부터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 오히려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종종 심심하면 해오던 사람 만나는 어플을 조금 다르게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상관하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이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내 마음을 직접적으로 어필하자고. 그렇게 세 명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그 중에 칵테일도 마시고 미니골프를 치자며 유일하게 데이트 플랜을 짰던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4월 말 나와 E는 날씨 좋은 오후에 아트갤러리 앞에서 만났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카페 파티오에서 스프리츠를 마시며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 했다. 이런 인위적인 만남을 내가 주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낯을 가리던 성격인데다가 영어로 이야기해야 해서 매우 얼어있던 나에게 E는 고맙게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줘서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다 한 후에는 계획대로 미니 골프를 치러 갔고 저녁으로 리틀 이태리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지금까지 먹어본 피자 중에 제일 맛있는 피자를 맛봤다. 후식으로 젤라토까지. 젤라토 맛있는 집 가고 싶으면 꼭 캐나다플레이스의 Motoretta를 가보시길. 캐나다플레이스의 야경을 보며 세상 맛있는 젤라토를 먹었는데 분위기가 로맨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유럽사람의 인사법을 알려준다면서 매우 어색한 허그를 했던 것도 생생히 기억나 가끔 놀리곤 한다. 그렇게 집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게스타운의 love 형광등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입원 후에(나는 입원을 했고 그 기간 동안 그 친구는 자기 나라로 떠나 있었다) 다시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8개월째 연애 중이다. 부끄럽지만 인생에서 가장 길게 한 연애를 한국인도 아닌 다른 외국인과 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가끔씩 놀랍다. 오히려 워킹홀리데이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현재 주어진 인간관계에 집중하니 이런 새로운 결과들이 나온 게 참으로 신기하다.
워홀 초반과는 달리 중반에서부터는 누군가 늘 함께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든든하게 지냈다. 입원 후에 가는 병원을 같이 가줬고 어디를 한번 여행하려면 날짜를 맞추는 것과 같은 꽤나 번거로운 과정 없이 늘 쉽게 쉽게 밴쿠버를 마음껏 여행해 볼 수 있었다. 여행뿐 아니라 같은 이민자로서 내가 비자문제로 불안해할 때 옆에 같이 있어주면서 마음껏 공감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 4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