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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딩 Jan 29. 2024

밴쿠버 워홀살이 딱 1년차_그 생생한 후기4

밴쿠버 한인업체의 실체_텃세도 이런 텃세가 없습니다

텃세

 흔히 밴쿠버 한인 레스토랑의 텃세란 이런 것이다. 한두 번 가르쳐주고 실수하면 타박하기. 대놓고 남의 얘기 앞에서 하기. 마음에 안 든다고 쉬프트 잘라버리거나 팁 줄이기.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못하는 점 찾아내서 면박주기. 로컬잡에서 벗어나 영주권을 위해 스폰받은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레스토랑의 텃세란 밴쿠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도 배웠다. 불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고 빠른 속도로 정확한 음식을 좋은 '서비스'와 같이 제공해야 하는 곳이니까 모든 것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서버경력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미국문화를 접한 나로서 의외로 새롭게 배웠던 문화가 앞서 말했듯이 이 레스토랑 문화였고, 그만큼 좋은 서버의 기준이 한국보다 높다. 수많은 메뉴도 소스까지 다 알아야 하고, 계산받는 법, 주문받는 법, 오더 넣는 법 또 센스 있게 메뉴추천이라던가 손님을 얼마나 즐겁게 해야 하는지 등 단순히 메뉴 받고 음식주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 와서야 알았다. 이러니 여기서는 서버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한인 레스토랑에서 적용되려면 몇 가지 더 추가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기준이 완벽해야 하고 더 빨라야 하며 아부까지 잘 떨어야 한다. 거기에 지정된 테이블이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서버들과 팁을 나눠야 했다. 이게 무슨 대기업 취직하는 것처럼 이렇게 힘들 일인가. 그래서 워홀준비생들은 한인 레스토랑에서 영어의 힘듦 없이 좋은 팁을 벌고 싶으면 어느 정도 잔소리를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기를 바란다. 좋은 팁 대신에 한국에서도 겪지 못했던 신종 텃세를 겪을 것인가. 새로운 문화경험과 인간관계를 얻는 대신 금전적 이득은 버릴 것인가. 아 물론 둘 다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굳이 겪어야 하는 경험인지도 잘 모르겠고.


  서버일을 시작한 건 퇴원한 후 3주 정도 뛰었다. 서버 일도 처음이지 생선은 연어와 참치밖에 모르지, 체력은 인생 최악이라 접시 하나만 들어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지. 때마침 아프기 전에 일하라고 연락받았던 초밥집에서 풀타임을 주기 전에 한 달 동안은 일주일에 하루만 쉬프트를 줄 수 있다고 했고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던 나는 괜찮다고 했다. 생선에 대해서도, 메뉴에 대해서도, 식당 일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또 거기에 체력은 인생 최악이었는데 당연히 일주일에 한 번씩만 트레이닝을 하는데 모든 식당일을 다 알 리가 없었다. 실수는 계속해서 반복됐고 레스토랑은 바쁘다 보니 그것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준다기보다는 커버 치기에 바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일주일에 한 번 트레이닝을 마치고 풀타임을 주기 바로 직전 다음 주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lmia를 지원받으려면 주 35-40시간 풀타임이 필요하다) 서버 잡을 한 번도 안 해본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만 트레이닝을 받으니 레스토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리는 만무했고 일식당이라는 낯선 재료와 메뉴는 적응하는데 시간을 더 늦추기만 했다. 거기에 제일 충격받은 피드백은 내가 일을 하기 싫어 보인다는 말이었다. 메뉴실수는 워낙 많이 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처음으로 한국말로 일을 배워서 그런지 일이 매우 쉽게 여겨졌고 손님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나름 재미있게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남들이 생각하는 게 극과 극으로 다를 수가 있을까. 그렇게 어안이 벙벙함을 뒤로하고 침착하게 다시 내가 했던 노력들을 되돌아봤다. 로컬펍에서 트레이닝을 받았을 땐 세 시간짜리 트레이닝을 무조건 다 녹음해서 다음 트레이닝 전에 다시 한 번씩 듣고 복습까지 완벽하게 하고 갔었다. 이곳에 와서는 모든 게 다 쉽게 쉽게 잘 들리기도 해서였을까 아니면 워낙 관심 없는 메뉴들이라 그런가 아니면. 둘 다인 건가. 그냥 일가기 전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메뉴판 한번 훑어본 게 내가 한 모든 노력이라는 걸 깨달았고 조금 마음가짐을 더 진지하게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백 프로 잘못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한 달 동안 lmia를 핑계로 펑크 낸 쉬프트에 12시간씩 일 시키고 오버타임피도 안 주고 풀타임 직전에 자른 식당이었으니까)


지겨운 스시의 세계. 그나마 다행인건 날것을 조금 먹을 수 있을 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lmia를 위한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약 다섯 곳 정도 면접을 본 후 하이어링된 레스토랑에서도 잘하면 lmia를 해준다는 조건 하에 일을 시작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풀타임을 줄 수가 없는 구조였고 레스토랑의 위치나 환경 자체가 오래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때가 7월 정도였던 것 같다.  하려면 사장이 지원해 주기로 마음먹기까지 최소한 한 달의 시간 + lmia신청 들어가고 받기까지 걸리는 4달 정도를 생각하면 내년 1월 말에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끝나는데 바로 이어서 받기에 매우 시간이 촉박했다.

그와중에 데드 80 성공. 스트레스가 오히려 도움이 됐을지도


 

시간 안에 스폰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은 생각보다 너무 컸다. 영주권은커녕 lmia 못 받아서 워킹홀리데이비자가 끝나면 한국에 가야 하나. 돈은 애초에 입원비와 치료비로 다 써버렸는데 학생비자로 어떻게든 연장해야 하나. 왜 이렇게 하나같이 되는 일이 없지. 애초에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초밥집에서 일을 구했어야 했나. 나의 로컬잡 목표는 사치였나. 가끔은 후회되기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속상해 집 앞 바닷가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민 에이전시에서의 잡매칭을 통해 현재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lmia를 지원받기로 했다. 다행 히히 고용되자마자 지원을 받아서 워킹홀리데이비자가 끝나는 시점에서 몇 달 걸리지 않아 lmia로 연장을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 열심히 일을 배워서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이 레스토랑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레스토랑은 다른 레스토랑과 달리 체계가 강력하게 잡혀있었다. 많은 일들의 분담이 다 나뉘어 있었기에 전에 일했던 다른 레스토랑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밴쿠버 한인업체에서 쉽게 일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일하면서 소문으로 들었던 어떻다 하는 것들을 직접 겪었고 일하면 일할수록 절대 사장님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함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안 그래도 일 시작하자마자 스폰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일하다 보니 미운털이 박히게 됐다. (현재 일하는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 어떻게 하면  사장님에게 조금 더 잘 보일 수 있을까 하던 중에 손님 중에 전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종종 봤었던 할머니 손님이 지금 일하는 곳에도 온 적이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며 그 할머니 손님이 올 때마다 종종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비자 지원을 받는다고 했더니 사장님한테 좋은 서버라고 말해주시겠다며 사장님을 찾았다. 그래 이거야. 나만의 단골고객을 만드는 거야. 그 이후부터 한두 번씩 본 손님들이 있으면 한 두 마디씩 더 말을 붙였고 말이 많은 외향인 남자친구덕에 예전보다는 편하게 손님들에게 말을 붙일 수 있었다. 아 영어실력이 늘었던 건 덤이다.

가끔씩 나의 사회생활용 외향력과 캐네디언의 찐 외향력이 만나면 나도 모르게 최고의 서버로 등재되는(?) 날이 오기도 한다. 나 나름 내 직업 즐기고 있는 듯


- 5편 마지막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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