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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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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Feb 08. 2024

이만원의 행복

- 교직원동아리 '어작'의 두번째 책에 쓴 글

아직까지도 내가 걷게 된 길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되돌아보니 스쳐 지나가고 놓치고 얽혔던 인연들이 지금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 담은, 「아무튼 나의 길」 중에서


“똑바로 누우세요.”

벌거벗은 채 낯선 베드 위에 몸을 눕혀야 하는 어색한 상황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물기라고는 하나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몸을 더 경직되게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선택이니 어쩌랴.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만 원의 행복’ 

지인이 ‘만원으로 누리는 최대의 행복’이라는 말과 함께 내게도 해보라고 권했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기에 매우 낯설고 두려워서 처음엔 거절했다. 그런데 “대신 만 원을 내주겠다”라는 달콤한 유혹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목욕탕에서 실오라기 하나 거치지 않은 완전 나체의 몸을 미끌미끌한 베드에 누워 낯선 사람에게 맡긴 게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만원으로 등도 밀 수 없을 만큼 물가가 올랐다. 만 원의 행복이 만 오천의 행복을 지나 이만 원의 행복을 넘어선 지 꽤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한 3년여 대중탕에 가지 않았다. 대중탕에서 하는 목욕은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하는 두 번의 샤워로는 채워질 수 없는 면이 있지만, 팬데믹의 두려움 앞에서 자연스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마침 아버지 제사 때문에 고향 집에 내려갔다가 모처럼 대중탕에 들렸다. 녹차 해수탕이 유명해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라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거의 매번 들렸었다. 이제는 병원과 약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이 되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목욕탕을 찾았다.


 ‘세신 20,000원’

벽에 붙은 가격표를 보며 ‘다른 곳에 비하면 많이 저렴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지 않고 세신사를 부르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에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를 입고, 마스크를 쓴 그가 나타났다. 마스크를 써서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나보다 젊어 보였다. 오랜만에 목욕탕 베드 위에 누웠더니 먼저 천장을 보고 누워야 하는지 엎드려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똑바로 누우세요.”라는 그의 묵직한 말이 떨어졌다. 


베드에 눕자마자 눈을 감아 어떤 표정으로 그가 때를 미는지 알 수 없지만, 팔, 다리, 몸통, 등 순으로 가해지는 따가움은 그동안 만났던 세신사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거친 나무를 사포를 이용해 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최대한 참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기에 “살살요”라고 외치려고 하면 다른 부위로 떼 수건이 이동해 적절한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몸 곳곳의 신경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고통의 시간이 겨우 끝났다. 


그런데 바로 이어질 마사지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때를 밀기 전에 그가 “목과 어깨 마사지까지 하면 3만 5천 원인데 하실래요?”라고 해서 “네. 그럴게요.”라고 선선히 대답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때를 다 밀고 나서 이어지는 마사지는 좀 전의 사포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가끔 해외여행 가서 받는 마사지를 생각하며 받겠다고 했던 것인데 처음부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아”라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타박이 바로 이어졌다. 

“힘주면 안 돼요!”

‘돈 주고 고문당하는구나!’

갑자기 뺨을 스치며 주르륵 무엇인가가 흘러내렸다. 머리에 남아 있던 물방울이 눈을 지나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것인지. 모처럼‘(이)만 원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어 덜컥 몸을 맡긴 것이 고통의 50분을 선사하는 결과로 다가왔다. 


“목하고 어깨가 정말 많이 뭉쳤어요. 이러면 자고 일어났을 때 피로가 풀리지 않아 꽤 힘들었을 텐데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고문의 현장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그렇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급히 빠져나오는데 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녹차탕에서 한 5분 정도 몸 담그고 가요. 그러면 좀 더 풀릴 테니까.” 

‘다시는 내가 이곳에서 때를 미나 봐라.’ 

그래도 바로 나가지 않고 녹차탕에서 5분을 꼬박 채우고 나왔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데 좋다고 하니 일단 감정은 눌러 둔 채로.


젖은 몸을 닦고 보관함 키를 받기 위해 세신사가 있는 계산대로 갔다. 처음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계산대 테이블에 그가 엎드려 있었다. 마치 전력을 다해 경기를 마치고 나와 기진맥진 쓰러진 격투기 선수처럼. 

‘내 뭉친 어깨와 목의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이분이 최선을 다했구나!’ 

좀 전까지 들었던 온갖 불만과 비난의 마음이 싹 가라앉으며 미안함이 몰려왔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좀 더 엎드려 있게 놔둘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그를 불러 깨웠다. 때를 밀 때만 해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몰랐는데 마스크 없는 민얼굴을 보니 연배가 훨씬 있는 분이었다. 

‘실력이 없는 저경력자가 무지막지하게 내 몸을 다루었구나!’라고 생각했던 불만은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 온몸에 붙어 있던 때가 샤워기의 세찬 물에 말끔히 씻겨간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시트에 등이 닿자 축구 경기 중 넘어져 생긴 상처에 뭔가 닿기라도 한 것처럼 따가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는 그 세신사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음에 또 가서 내 몸을 온전히 맡길 용기가 선뜻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2만 원’으로 누리려고 했던 ‘행복’이 ‘3만 5천 원의 고행’이 되었지만, 내 몸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는 나름 소중한 시간이었음에 감사한다. 다른 목욕탕에서 이 가격에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이기에 다음번에 고향을 방문하게 되면 또 찾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선생님, 살살 좀 해주세요.”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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