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와 향기와 위로
입술이 닿는 부분에 금테가 둘러진, 두 개의 꽃무늬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같은 문양의 티팟에서 찻잎이 우려 지는 동안 찻잔도 따끈하게 데워질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찻잔을 데우는 일을 잊지 말라고 재차 당부한다.
남편은 생애 말기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의사다. 위로를 건네고 싶지만 언어로 가닿을 수 없는 지점에 선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난다. 남편은 낮은 목소리에 작은 탄식을 더해 그분들께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이럴 땐 어떤 차가 좋냐고 물어오곤 한다. 그러면 나는, 차에 대해 대단한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차가 주는 위로를 아는 나는, 주방 수납장 한켠에 차곡하게 놓인 차와 다구들을 둘러본다. 알가차라고 반발효 차인데 이게 좋겠어. 녹차가 낫겠는데? 홍차보다는 카페인이 안 들어간 피치패션티가 좋겠다. 그리곤 남편에게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차 우리는 방법을 시연한다. 차호와 찻잔을 데워 고루 온기를 더하고, 우려낸 차를 공도배에 담아 차의 농도를 고르게 해야 한다고, 마시는 차에 대한 이야기를 보태면 더 좋다고 설명한다. 나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몸짓과 시선 앞에서 나의 기술적인 설명들은 그만 납작한 것이 되고 만다. 들숨에 부풀고 날숨에 가라앉는 그의 정성이 너무나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생동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을 세워 그의 마음이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께 오롯이 가닿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