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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Jun 30. 2024

공자가 죽어야 사회복지가 산다

무엇이 사회복지의 혁신을 가로막는가?

수염의 발단

  지금까지 나는 매일 면도를 하고 출근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는 것은 출근하기 전 당연한 일과 중에 하나였다. 대체로 전기면도기를 사용하지만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은 일회용 면도기로 한 번 더 깔끔하게 면도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만큼 나의 일상에서 면도는 중요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랬던 내가 면도를 안 한 지 벌써 두어 달 지났다. 체질상 털보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과는 인상이 확실히 많이 바뀐 건 사실이다.


  갑작스런 수염의 시작은 이랬다. 매일 면도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아침마다 면도날에 베인 피부를 주말에라도 잠깐 쉬게 할 겸 그냥 놔둔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러던 여느 월요일 아침, 주말 내내 까무잡잡하게 자라난 수염을 면도하려고 거울을 보다가 문뜩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면도를 해야만 하는 거지?!’, ‘수염도 다 이유가 있어서 나는 게 아닐까?’, ‘미친 척하고 한 번 길러봐?!’ 순간 나의 괴팍한 성격이 또다시 발동하기 시작했다.


  면도를 하지 않고 한동안은 주변 눈치를 많이 살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마누라의 잔소리가 신경이 쓰였는데 (약간의 비난과 조롱이 있긴 했지만) 의외로 금방 잠잠해졌다. 아마도 마누라는 ‘잠깐 저러다 말겠지’ 싶었나 보다. (지금은 거의 자포자기한 듯 신경도 안 쓴다.) 그 다음은 사무실 직원들의 눈치를 봤다. 원래도 나를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여기는 터라 처음 며칠 동안은 힐끔힐끔 쳐다만 보는 정도였다. 너무 반응이 없어서 살짝 빈정이 상하려던 찰라, 드디어 한 여직원이 내 수염을 알아보고 반응을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1초도 망설임 없이 ‘멋있는데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잠깐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하나마나한 질문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원은 그저 사회생활을 충실히 한 것일 뿐 평가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나는 주변 눈치를 계속 살피면서 수염 난 얼굴로 지금까지 출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별 반응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알아보던 말던 나 혼자 오기가 생겨서 쓸쓸히 수염을 기르는 중이다. 어쩌다 우연히 수염을 기르고 보니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나의 외모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게 수염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남자들이 면도를 하는 이유

  남자들은 왜 굳이 애써 면도를 (해야만) 하는 걸까? 옛날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해서 몸에 난 터럭 하나까지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체의 일부분’이라는 유교적 인식 때문에 수염도 깎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서 옛날 우리나라 남자들은 모두 수염을 길렀다. 그런데 1895년 일제는 을미개혁을 통해 조선 남성들의 상투를 강제로 자르는 단발령(斷髮令)을 시행한다. 단지 ‘위생에 이롭고 일을 하는데 편리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마도 이때 같은 이유로 수염도 함께 잘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일제의 탄압으로 시작된 서구의 면도문화가 시대가 변한 지금까지 수염은 지저분하고 불결하거나 단정치 못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으로 남아있다.


  일제의 자의적 해석으로 ‘신체발부 수지부모’는 처참하게 짓밟혔지만 윗사람을 공경하고 예(禮)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잔재는 우리의 일상에 아직 남아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이 수염을 기르면 "어린놈이 어른 앞에서 감히 수염을 길러?"라고 고까워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그래서 유교 문화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는 젊은 사람이 수염을 기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회사원이나 공무원 같은 관료적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수염 하나로 인사고과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예전에 국내 항공사 조종사가 수염을 길렀다가 징계를 먹은 적도 있다. 물론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긴 했지만 이후 그 조종사의 직장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하늘 위에서 일하는 조종사도 수염 때문에 징계를 받을 판인데,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상급자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수염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면도를 하지 않으면 깔끔하지 못하다고 핀잔을 들을뿐더러 자칫 게으르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또 모두가 하지 않는 짓을 기어코 한다면 눈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조직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하는 이미지로 낙인 찍혀 앞으로 직장생활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염을 기르려면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먹고 살려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다. 무릇 수염을 기르는 것이 모든 남성들의 로망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직장인 남성들의 로망인거다. 수염, 그게 뭐라고.

수염과 혁신의 상관관계

  수염을 기르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나는 지금 직장인들의 로망(?)인 그 대단한 수염을 기르는 중이다. 그렇다고 내가 용기와 베짱이 두둑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주변의 눈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사람이 고깝게 여길 수도 있는 수염을 기르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혁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다. 고작 수염 따위를 기르는데 무슨 '혁신'까지 들먹일 일인가 싶지만, 수염을 기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우연히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이 왜 잘 먹히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염과 혁신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의 궤변을 끝까지 들어주길 바란다.


  나는 수염을 일종의 자기혁신이라고 생각한다. 혁신(革新, innovation)이란게 별다른 것이 아니라 묵은 풍속이나 관습(또는 조직, 방법 등) 따위를 바꾸어서 무언가 새롭게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수염을 기르는 걸 혁신이라고 말하려면 지금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구한말 일제 강점기 시점으로 보면 오히려 면도를 하는 행위가 당시로서는 대단한 혁신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면도를 하는 것을 두고 혁신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염을 기르던지 면도를 하던지 둘 다 각각의 시대상황에서는 해묵은 관습을 깨는 혁신의 사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둘의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혁신의 주체다. 일제 강점기 때 상투를 자른 행위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미래를 걱정(?)해서 단행한 대단한 혁신일지 모르겠지만, 조선 남성의 입장에서는 외력에 의한 강제로 시행된 부끄러운 혁신이다. (실제로 자괴감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외력에 의한 혁신은 이것저것 따질 수도, 눈치도 볼 것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당연히 성공확률이 높다. 다만, 수동적으로 혁신을 맞이한 당사자들은 어떠한 명분도 없이 그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무기력하게 따를 뿐이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반면에 현대사회에서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기 스스로 원해서 하는 혁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만 그런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그렇다는 말이다. 그냥 가만히만 놔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수염을 혁신이라고 말하기 부끄럽긴 하지만, 어쨌든―) 아무도 하지 않고 시키지도 않는 짓을 혼자서 하려다 보니 이것저것 따지고 눈치 볼 것도 많다. 우리나라는 시키는 일만 해도 욕을 먹지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면 더 욕을 먹는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쓸데없는 혁신은 먹고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애써 고집을 부릴 이유가 없다. 그저 현실과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면 그만이다. 혁신, 그게 뭐라고.

혁신을 가로막는 것

  수염을 밀면 깔끔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고, 머리카락을 밀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사회가 바로 우리나라다. 몸에 난 털 하나를 가지고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한다는게 말이 될까 싶지만 대한민국은 내 것도 아닌 남의 털 하나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런건지 실제로 경험하고 싶으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면접시험을 보러 가보면 안다. 그럼 결과가 증명해 보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수염 하나를 기르기가 어려운 것일까? 지금의 나처럼 한 번 미친 척하고 수염을 길러 보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걸 금방 알게 될 텐데, 이 또한 한번 미쳐봐야 가능한 일이라 딱히 권장하고 싶지 않다. 미치지 않고 맨정신으로 수염을 기를 수는 없는 것인가? 한 두어달 (수염을 놓고)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그 답을 우리나라 유교문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옛날 유교문화 때문에 (신체발부...) 자를 수 없었던 수염을, 이제는 그 유교 때문에 수염을 못 기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수염 하나를 기르자고 (우리)나라의 근간이 되는(―왜 근간이 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유교문화를 뿌리째 흔들려고 이 새벽에 남몰래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나 따위가 흔든다고 흔들리기나 하겠나) 다만, 2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조직의 혁신과 사회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누군가 용기를 내서 혁신을 이야기하면, 취지는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처음이라 안 돼”, “법이 없어서 안 돼”, “누구 때문에 (지금은) 안 돼, (그 사람 나가면) 나중에 천천히”....... 뭔가 대단한 걸 바꿔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묻고, 따지고, 눈치보고, 이런저런 말들이 참 많다. 그냥 바꾸기 싫다고 말하면 될 것을 자신은 다 이해하는 척, 착한 척 빙빙 돌려 혁신을 방해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걸 나의 능력부족이었다고 치부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괜히 분란만 일으켰다고 자책하면서 쉽게 포기하고 살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힌 유교의 잔상 때문이었다.

공자가 죽어야 사회복지가 산다

  내 고향은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지금도 안동에 가면 초입부터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고 크게 써 붙어져 있다. 나는 그런 곳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조상을 숭배하고, 어른의 말씀은 항상 순종해야 한다고 배웠다. 학교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어른을 보고 인사를 안 하면 혼쭐이 났다. 나도 한 때는 그것을 가장 아름답고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원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자들이 수염을 기를 줄 몰라서 면도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루만 면도를 안 해도 눈에 뜨게 저절로 자라는게 수염이다. 그걸 남자들은 어김없이 아침마다 싹싹 밀어버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남자들은 이런 행위를 빠르면 중학교 때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수염 때문에 위생이 나빠져서 병에 걸려 죽을까봐 면도를 하는 남자는 없다. 그러려면 온몸에 난 털이란 털은 다 밀어야 한다. 남자들이 죽을 때까지 면도를 하는 이유는 단연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들의 눈치다. 면도를 하지 않으면 엄마아빠한테 혼난다. 나이가 들어 직장에 가서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직장 상사에게 혼난다. 아니 아예 취직이 안 될 수도 있다. 어른들의 말씀에는 항상 순종해야 한다. 어른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의 말씀에 대꾸를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자랐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문화는 조선 왕실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 교육 따위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 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기간은 이제 끝난 것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中


  우리가 혁신을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혁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안하는 거다. 눈치를 본다는 의미는 예의를 따진다는 의미다. 혁신보다 예의가 우선이다. 케케묵은 관습과 관행이 불편하긴 하지만 혁신을 말하는게 더 불편하다. 왠지 어른들이 지금까지 잘 해온 일을 두고 버릇없이 대거리를 하는 기분이다.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양심에 찔린다. 괜한 고집을 부렸다가는 부모를 욕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사는 거다. 그래서 세대가 바뀌어도 혁신은 없는 거다. 말그대로 이.생.망*이다.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라고 별반 다를게 없다. 오히려 유교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가 더 심하면 심했지 이 바닥도 도긴개긴이다. 정치가 바뀔 때다 매번 ‘최초’라고 들고 나오는 사회복지 정책이 무슨 혁신이란 말인가. 사회복지는 '사람'을 위한 복지여야지 '정치'를 위한 복지가 되면 안되는 거다. 그건 혁신이 아니라 사회복지로 포장된 위선이다. 이러다간 사회복지도 '이생망'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살고, 사회복지도 산다.♣


*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



그나저나 올 추석에 수염을 기른 작은 아들의 모습을 본 부모님의 일그러진 표정이 벌써부터 아른거린다. 엄마한테 혼나기 전에 다시 면도를 해야 하나? ...알쓸복잡


[사족: 타인의 시선]

육체는 내 경험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타인의 시선을 받게 된 다음부터는 여느 다른 육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또 사고와 감정은 이제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전에는 그저 느끼고 생각하기만 했지만 타인으로부터 관찰당하는 지금은 나를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로 스스로가 인식하게 된다. (중략) 그런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지금, 생각과 감정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현존한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방식도 총체적으로 다르다. 나는 나를 의식하며 나 자신을 가로지른다. 나는 나를 타인의 눈으로 본다. -<삶의 격>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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