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알쓸복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시스 Sep 07. 2024

사회복지사의 외식(外飾)

사회복지 홍보의 실체

개똥 같은 일

  “사회복지는 홍보가 중요하다!”는 말은 내가 사회복지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아마도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라는 말과 함께 이 바닥에서 가장 많이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아닐까 싶다. 나는 어쩌다 보니 2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사회복지에서 왜 홍보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것은 마치 어린 장금이(―드라마 「대장금」의 여주인공―)에게 “왜 홍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까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울먹였던 것처럼 (사회복지에서 다들) 홍보가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그렇다고 한 것뿐인데 자꾸 이유를 따지면 나도 장금이처럼 할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회복지 안에서 홍보의 중요성은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불문율(不文律)이 된 지 오래다.


  나는 가끔 직원들(사회복지사)에게 (그냥) 홍보를 위해 신문에 보도자료를 한번 내보라고 하면 백이면 백, 개똥 밟은 표정을 짓는 걸 목격한다. 사회복지에서 홍보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다들 난리인데, 일선 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는 그게 또 아닌가 보다. 하긴 나도 막상 홍보 일을 하다 보면 ‘이게 사회복지와 무슨 상관인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긴 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복지사들에게 홍보는 업무분장이 명확하지 않고 그저 관행적으로 주어지는 일이다 보니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그런 개똥(?) 같은 일이 돼버렸다. 그걸 알면서도 (나만 좋자고) 일을 시킨 내 잘못이 크다. 이유야 어찌됐건 간에 사회복지사들이 홍보 일을 개똥 보듯 한다는 건 (관리자의 입장에서)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개똥(?)의 실체

  우리(사회복지사)가 개똥처럼 여기는 홍보업무는 대충 이렇다. 어떤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하게 되면 사회복지사들은 보도자료라는 걸 쓴다. 사회복지사는 자신이 마치 기자가 된 것처럼 익숙한 솜씨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써서 자연스레 언론사에 보낸다. 별것 아닌 일도 특종인 것처럼 예쁘게 포장(?)을 한 보도자료를 기자들이 픽(pick)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혹시라도 아는 기자라도 있으면 전화를 걸어 애걸복걸하기도 한다. 그럼 기자들은 내용이 특별히 마음에 들지 않은 이상 지면이 남으면 선심 쓰듯 한 꼭지 실어주고, 아니면 그냥 읽지도 않고 폐기처분 해버린다. 상사들로부터 국어 실력을 의심받아 가면서 몇 번씩 고쳐 쓴 보도자료가 기자들에게까지 개똥 취급을 받고 있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회복지사들은 매번 보도자료를 써서 기자들에게 갖다 바친다. 단지 홍보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원래 기사를 쓰는 건 기자들의 일이고, 사회복지사는 사전에 약식으로 보도자료를 써서 취재요청을 하는 게 맞다.)


  요즘에는 SNS가 일상이 되다 보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통해서 직접 홍보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보도자료도 열심히 쓰면서 말이다) 그런데 SNS 홍보는 누가 보던지 말던지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일단 많이 올리고, 많이 보내고 보자는 식이다. 나는 사실 다른 복지기관에서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뉴스레터나 홍보 메시지가 귀찮아서 스팸(spam)을 걸어둔 지 오래다. 서울에 있는 복지기관이 제주도에 사는 나한테까지 홍보를 할 이유는 없지 않겠나. 요즘에는 또 홍보를 한답시고 유튜버(YouTuber)가 된 후배 사회복지사들도 종종 눈에 띄는 것 같다. 물 불 가리지 않고 홍보를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라떼처럼 무식하게 열정페이로 밤을 새워가며 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복지, 이 바닥에는 유난히 행사(기념식 따위)가 많다. 행사도 다 홍보에 일환이긴 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행사의 취지나 의미를 알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내빈(중요한 손님)을 챙기는 일에 열중한다. 혹시라도 꼭 초대해야 할 사람을 초대하지 않았거나, 소개해야 할 사람을 소개하지 않는 건 당사자에게는 큰 결례이기도 하지만 행사가 끝나도 가장 큰 오점으로 남는다. 예컨대 노인의 날 행사에 가장 중요한 내빈은 노인이 아니라 시장과 국회의원이 되는 식인데 이분들에게 결례를 범했다가는 앞으로 떡고물(?)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정치적인 관계로 얽히고설킨 내빈들의 눈치만 살피다 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하는게 개똥같은 사회복지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사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이벤트(아님 퍼포먼스?)다. 귀한 분들을 모셔다 놓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핀잔을 들으면 안 되니까 매번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해야)한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도 성화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가 하이라이트이듯이 매년 반복되는 사회복지 행사에도 매번 다른 퍼포먼스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늘 그랬듯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복지는 항상 예산이 부족하다. 그래서 웬만한 건 사회복지사가 직접 다 한다.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쯤은 사회복지사의 기본 소양이기도 하다. 그렇게 폭죽을 터트리고, 꽃가루를 날리며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나면 ‘내가 이러려고 사회복지사가 됐나?’ 싶은 자괴감만 덩그러니 남는다.

외식(外飾)하는 자

  성경(聖經, Bible), 특히 신약성경을 보면 ‘외식하는 자’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나처럼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외식’을 흔히 알고 있듯이 ‘바깥(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더군다나 성경에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를 엄청 싫어하시는 걸로 나오는데, 이걸 두고 ‘예수님은 집밥을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성경에 나오는 외식(外飾)은 ‘겉으로 보기 좋게 꾸민다’는 뜻의 그리스 헬라어 ‘휘포크리노마이(ὑποκρίνομαι, ~인 체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휘포크리노마이는 원래 가면을 쓰고 연극하는 배우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외식하는 자’는 속마음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겉만 보기 좋게 꾸며서 밖으로 드러내는 위선적인 사람을 말한다.


  외식하는 자에 관한 내용은 신약성경 맨 첫 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에 잘 나타나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인 「산상수훈(山上垂訓, Sermon on the mount)」이라는 기록이 있다. 산상수훈에는 ‘주기도문’뿐만 아니라 ‘빛과 소금’,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가르침들이 많은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는 말씀도 여기에 나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중략)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중략)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마태복음 6장>

  잘 알다시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모름지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줄 때는 남몰래 은밀하게 하라는 뜻이다. (홍보를 열심히 하는)사회복지사로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기에 등장하는 외식하는 자다. 외식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구제할 때(도움을 줄 때) 영광을 받으려고 거리에서 나팔을 부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외식하는 자'로 지목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율법(십계명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매우 중시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이 가진 이익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온갖 외식을 다하는 사람들로 예수님과 자주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기도 하셨다.

손가락 말고 달을 봐야지

  (사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나약한 인간인지라 예수님과 같은 선각자들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것을 고백한다. 오히려 사회복지사로 살아 온 지난 삶은 2000년 전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비교해도 별다를 게 없는 삶이었다. 나는 여태껏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나의 작은 실천 하나까지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동네방네 나팔을 불며 떠들고 다녔다. (실적과 평가를 잘 받아서 영광을 얻으려고) 없는 일도 있는 것처럼 꾸며대기도 했고, 작은 일도 크게 부풀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른손도 알고 왼손도 알고 동네 바둑이도 다 알도록 홍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법률과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으로 정의로운 척, 특별한 척, 화려한 척 온갖 외식(外飾)이란 외식은 다했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처럼 말이다. (―물론 사회복지사로서 업무적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만약 내 삶 자체가 그랬다면 나는 천벌을 받아도 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로 살아 온 나의 삶을 회개한다(아멘!).


  홍보는 다른 말로 PR(Public Relation)이라고도 한다. PR은 목적에 따라 광고, 홍보, 선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우리(사회복지사)가 하는 홍보는 PR의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하다. PR은 말 그대로 ‘공중(公衆)과의 관계(public relations)’를 의미하는 것으로, 궁극적 목표는 공중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있다. 예컨대 TV에서 청춘남녀가 나오는 연애프로그램을 보면 이성에게 자신을 알리고 매력을 뽐내는 것을 ‘자기PR’이라고 한다. 자기PR은 자신의 매력을 이성에게 알려서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 않겠나. 그런데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으로는 음흉한 생각을 하는(외식하는) 사람은 이성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마음에도 없고 들어줄 생각도 없는데 무턱대고 자기PR만 하게 되면 좋은 관계는커녕 오히려 금방 질리거나 심하면 스토킹으로 신고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지금도 하고 있는) 사회복지 홍보는 왠지 PR의 본질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사회복지 PR(홍보)의 본질은 지역사회(공중)와 좋은 관계(브랜드 이미지)를 통해 공중(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게 핵심인데, 지금의 사회복지 홍보(PR)는 핵심은 놓친 채 사람들에게서 영광만을 받으려고 나팔을 불고, 보여주기식으로 결과를 외식하느라 여념이 없다. 마치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형국(見指忘月)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달이 아니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사회복지사의 외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도를 넘어 선 것 같다. 이제는 사회복지사들이 당연한 듯 아무 거리낌없이 외식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면 개선될 여지라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말 노답이다. 이러다가는 사회복지의 본질마저 잃어버릴까 두렵다. 사회복지사의 삶이(또는 사회복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외식을 끊어야 한다. 독사의 자식이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 엄마가 그랬다. 외식을 많이 하면 뱃속에 구더기가 생긴다고... 알쓸복잡.

《산상 설교》, 칼 하인리히 블로흐 (1879년 作)



매거진의 이전글 공자가 죽어야 사회복지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