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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blue May 07. 2020

상처는 아물기 마련

젊은 나이에 눈을 잃을 뻔했다

정말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였다.


난생처음 들어본 ‘망막박리’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나는 아주 급하게 응급실을 가야만 했다. 아니 그것보다 꿈같은 교환 생활을 끝내고 아직 유럽의 향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온 지 3일 만에 끔찍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나의 마음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의사는 병이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고 왜 진즉에 안과에 오지 않았냐고 다그쳤다. 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니.. 그때는 제가 해외에 있었어서..’ 라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나도 알았다. 내 눈에 무언가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리투아니아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 달 남짓의 유럽 여행을 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10일 정도가 흘렀고, 그곳은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스페인의 ‘말라가’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휴양지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떨었다. 말라가 특유의 그림 같은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나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데 세상은 점점 일그러져 보였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오던,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효과가 내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떤 증상인지 몰랐던 나는 행복한 여행 속에 찾아온 불청객 취급을 하면서 남은 20일의 여행을 겨우 내 끝냈다. 그동안 온전하지 못한 나의 시각이 나를 점점 잡아먹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나는 6개월간의 짧은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꿈에서 깨버렸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집 근처에 있는 안과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기껏 해봐야 라섹 부작용 정도인 줄 알았다. 의사에게 나의 증상을 설명하고 몇 가지 검사를 거친 후 의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망막박리가 의심되니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손을 덜덜 떨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망막이 떨어져서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한대’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의 공기는 너무나 차가웠다. 엄마는 옆에서 핸드폰으로 망막박리에 대해서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반차를 내고 온 아빠는 묵묵히 운전을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2시간 동안 온갖 감정이 밀려왔다. 원망, 분노, 서러움, 허무함, 두려움, 후회의 감정들이 반복적으로 날뛰었고 나는 이러다가 영영 앞을 보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다행히 나의 왼쪽 눈에만 문제가 생긴 거였고,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했다. 그때 처음으로 스물셋이라는 나의 젊은 나이에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대학병원 안과 대기실에는 노부모를 모시고 온 자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사이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그렇게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고 내 왼쪽 눈의 시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술 이전과 수술 후 내 눈의 컨디션이 같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평생 동안 조심해서 살아야 하는 것도 내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사소한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으면 더 어려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었고, 자칫 영영 왼쪽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고, 수술비와 입원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셨고, 나의 안부를 물어보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평화롭게 자취방에 앉아 취업 걱정이나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이토록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망각'이라는 선물을 줬기에
그토록 끔찍한 일을 겪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2018.10.22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수술을 한 지 4개월이 지나고, 잘 버텨낸 나에게 주는 선물로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일상생활을 해도 괜찮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왜 이리도 기뻤는지. 일상 속에 잊고 있었던 ‘일상’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평화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별일 없이 일상을 흘려보낼 수 있는 건 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오면서 겪었던 자잘하고도 뾰족한 모서리들이 지나고 보면 다 무뎌져 있는 것처럼 그 흔적은 미세하게 남아있지만 그래도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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