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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가 나의 뮤즈 Jun 15. 2022

복수는 나의 것

내게만 강한 사람들이 있다

내게만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강약약강의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삶의 태도와 자세가 무서운 이유는 자신도 한방에 훅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강자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사실 주관적이다. 자긴객관적이라 하겠지만, 실상이 그러하다. 왜냐면  강함이란 대부분 겉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강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알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겉만 보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다는 말이다. 사람의 강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는 모습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인데 강약약강의 사람은 이걸 모르는  같다. 결국, 최종에 가서야 언듯 비친  강함을   있을 뿐이다. 그때를 사람들은 통쾌함과 정의 실현 식으로 표현한다. (사실 이런  보고 좋아하는 것도 일종의 강약약강이라 생각한다)


나는 복수하는 스타일이다. 당한 걸 씹고 되짚어 보길 쉬지 않는다. 대부분은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또 자연스레 해소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니다. 끝까지 또 문득 그 복수가 생각나고 견고한 내 속에 서랍에 잘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난 복수하는 스타일인 사람이다.

내게 문제는 복수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는 일어나기 시작한다. 먼저 내 평정심이 깨진다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정말 싫고, 나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복수의 대상이 생각보다 데미지를 크게 입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리둥절로 끝나면 쉬운 복수에 속한다. 하지만 복수하는 스타일은 한 번의 어리둥절을 시작으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복수를 계획한다. 이것이 상대방에겐

예상치 못한 불행이 있다.

똑같은 주제의 말을 하루 이틀 사흘 나흘까지도 가져갈 수 있는 게 복수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그 시간을 감정 소비한다고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내겐 감정의 소비가 아니기 때문에 참 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감정이 전혀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복수란, 자고로 감정이 들어가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복수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하고 끝나게 된다. 이런 감정의 빌드업을 통해 복수가 이뤄진다.

하지만 내가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딱 죽지 않을 만큼 그것이 감정이든 몸이든 복수해야겠다는 게 크다.

상대는 이런 나의 복수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이 내게 한 행동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은 그냥 그때의 감정을 실은 언행을 했을 뿐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복수의 그림은 이미 그때 그렇게 시작됐다. 상대는 모르 채 저절로 진행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복수하는 스타일은 밥 먹다, 퇴근하다, 잠들기 전에도 문뜩 그 사건이 떠오르고 다시 복수심을 불태워 계획을 세운다. 정제된 복수는 이미 거의 모든 걸 시뮬레이션해봤기 때문에 그냥 보통의 상대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복수의 백미는 칼과 같은 말과 행동이다.

쉽게 생각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그 속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잘 못 건드렸다간 훅 가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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