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가 나의 뮤즈 Nov 23. 2023

세상의 쓴 맛

사실 별것 아님

“화이트 초콜릿 모카 톨 샷추가 휘핑 주시고 뜨거운 거요.”


딱 봐도 뭔가 서툴러 보이는 앳된 알바생이었다. 감기 때문에 작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맘에 걸렸지만, 별생각 없이 커피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 주문과 달리 샷 하나가 빠져나온 커피에 분노의 한 고비가  찾아왔다.


-저기, 샷 하나가 빠진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 잔에 하나 더 부어드려도 될까요?

-아니요. 새로 만들어주세요.


샷 하나를 지금 부으면 원하는 맛이 아닐게 확실했다. 괜스레 까칠한 말투에 감기로 몽롱했던 정신과 목소리에 전투력이 상승했다.

커피를 건네준 직원은 주문 내역을 확인하곤 나의 달달하고 씁쓸할 하얀 초콜릿 커피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난 그 사이 계산 안 된 에스프레소 값을 치르러 조금 전 알바생 앞에 다시 섰다.


-혹시, 주문번호가 몇 번이시죠?


주문번호.. 라.. 닉네임으로 불러준다고 했지 무슨 번호를 말해 준 적은 없었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그래도 있을지 모를 그 번호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자 영수증을 찾았을 때 필요 없다며 알바생은 재결재를 요구했다. 그리고 분노의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다.


-혹시, 그럼 왜 주문번호를 물어본 거예요? 필요 없다면서요? 그리고 아까 제가 샷추가 분명히 말씀드렸고 제 말도 반복하면서 화면에서 뭔가 누르시던데 주문이 잘 못 들어간 이유가 있나요? 전체 취소 후 다시 결재가 아니라 샷 한나만 결재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격앙된 목소리에 저 멀리 검은 앞치마를 한 직원이 와서 신속히 나머지 계산을 끝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 직원도 나도 한마디만 더 하게 되면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참는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새로 받은 커피를 한 목음 마시며  별것 아닌 일에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의아했다. 그리고 예쁘고 착해 보이던 알바생이 나로 인해 세상의 쓴 맛을 보게 된 건 아닌지 싶었다.

난 커피의 쓴 맛을 정말 그 알바생은 세상의 쓴맛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매장을 나오는 내 뒤로 중지 하나를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알바생은 세상이 주는 압박, 거절, 비난, 억울함 나아가 외로움이나 슬픔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자기 시간을 쓰는 대가를 받으러 세상에 나온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론 이깟 가시 돋친 말쯤이야 잠깐 듣고

말아야할 흔하디 흔한 말이 돼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10가지 육아모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