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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의 이자까야 Feb 09. 2019

대기업 퇴사 후 스타트업에서 느끼는 3가지

재미있는 직장이란 것은 세상에 없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정해진 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평일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던 나날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가 그랬고 내 친구들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 지 6개월째 접어드는 지금, 과거에 내가 어떻게 그런 상태로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고민은 있다. 하지만 다른 차원의 고민이다. 과거에는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동일시되지 않아 파생된 문제들을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동일시된다. 따라서 회사의 성장을 고민하는 것이 곧 나의 성장을 고민하는 것이고, 내 성장을 고민하는 것 역시 회사의 성장을 고민하는 꼴이 되는 선순환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대기업 퇴사 후 스타트업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나름의 표현으로 기록해두기 위해 이 글을 적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서두에 미리 밝힌다.




1. 회사부일체

회사가 곧 사부(?)라는 나만의 신조어다. 회사로 인해 내가 성장함을 느끼고 또 나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뜻한다. 이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여 처음으로 생긴 인사이트이기도 하다. 전 회사에서는 이미 결론이 정해진 일들을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상대적이겠지만 스스로는 아무리 정성을 쏟은 일이여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일을 할 때 전적으로 '나'는 배제하고 회사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나의 성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스타트업에서 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하고 싶고, 해야 되는데 여력이 안돼서 못하는 일들이 많다. 회사에서 업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에 필요한 일들을 찾고 기획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동일시되는 방향으로 기획의 갈래를 잡는다(그래야만 나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과 토론을 통해 업무를 조율해 가는 과정 자체도 전 회사에서 느낄 수 없던 것들이다. 내 이야기와 논리가 받아들여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쪽이건 나의 의견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다. 회사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일희일비

대기업에서는 예산을 억 단위로 썼다면 현재 회사에서는 0 두 개가 빠져버린다. 그만큼 조그마한 프로젝트에도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일희일비가 항상 좋은 건 아니지만, 일하면서도 내가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콘텐츠, 내가 한 기획, 내가 진행하는 캠페인 모두가 과거처럼 보고선에서 잘리지 않고, 시장에서 즉각 평가받을 수 있다. 반응이 좋으면 기쁘고, 반응이 안 좋으면 슬프다. 때로는 반응이 안 좋을 때 나름의 합리화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포인트에서 좋지 않은 반응이 나왔는지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성공과 실패를 바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상사가 줄 수 없는 피드백을 고객에게 직접 받는다. 고객과 소통하며 일희일비하는 감정은 전 회사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다.




3. 운칠기삼

사실 모든 것은 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빈틈없이 준비한 캠페인이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면 여지없이 실패할 수 있다. 피자헛은 당시 도시어부로 인기가 높았던 마이크로닷을 모델로 내세워 신제품 홍보 동영상 광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논란으로 인해 광고를 내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자헛은 과감하게 모델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을 했다. 피자헛 본래의 신제품 홍보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미지수지만, 브랜드 바이럴 측면에서는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마이크로닷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피자헛 광고

피자헛의 예는 운칠기삼보다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운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피자헛의 노력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다. 열심히, 잘 준비하고 기도한다. 설령 잘 안되더라도 다음에 다시 하면 된다. 잘 될 때까지. 운칠기삼을 믿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 같은 마인드가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모든 일이 운칠기삼이라지만 그 30%가 내 노력 여하에 따라 70%의 운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느낀다. 운칠기삼은 운과 기의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아무리 좋아도 노력이 0이라면 모든 일이 0에 수렴할 것이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운의 레버리지 효과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쓰고 보니 너무 핑크빛으로 물든 것만 같다. 물론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조금 어두워졌다고, 다른 물감이 튀었다고 핑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회사 그리고 좋은 나를 만들어가는 지금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아낌없이 내 노력을 투자하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얼마만큼 성장할 것이며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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