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워라밸만 강조할꺼야~
"문화를 만듭니다. CJ." 비비고를 통해 해외 각지에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전파하고자 하는 CJ의 과거 슬로건이다. 당시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카피지만 요즘은 머릿속에 자꾸 맴돈다. 문화는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문화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 회사(마카롱)의 문화, 즉 '조직문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스타트업이 아니며, 성장을 하려면 좋은 서비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서비스는 바로 사람이 만든다. 즉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인드로 서비스를 만드느냐에 따라 회사의 성장 속도는 모닝이 될 수도, 페라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 함께할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어떤'을 정의해 나가는 것이 바로 조직문화라고 생각한다. 또한 조직문화는 회칙이나 강령 같은 가이드나 문서가 없더라도, 신입이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 회사의 직원과 대화를 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표님이 내게 말했다. 마카롱의 '어떤'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만들어가자고. 물론 당장 '판교에서 일을 잘하는 11가지 방법' 같은 문서화된 가이드를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대표님의 말을 듣고 내가 지금까지 마카롱에서 일했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합류하게 될 새로운 동료들이 이런 마음이면 좋겠다"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3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지금의 마인드 셋을 잊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워라밸은 영어인 Work & Life Balance의 약자지만 국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단어이다. 퇴근 후 업무 카톡, 의미 없이 잦은 회식 등 개인의 삶을 침범하는 회사 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단어이며, "일과 삶의 분리 또는 양립"의 의미로도 쓰인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일도 삶의 일부분인데 어떻게 분리할 수 있지?"
이는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일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다. 시쳇말로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얼마 안 되는 퇴근 후의 삶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한다.
나는 이 상황이 일과 삶은 분리되었다는 생각, 내 일이 아닌 회사의 일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 일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워라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현재의 업이나 회사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소리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편, 어떤 사람에게 일은 목적 그 자체이다. 일의 성취에서 오는 기쁨을 안다. 스스로가 일을 통해 성장하는 뿌듯함을 안다. 시켜서 하는 일보다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서비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나의 액션이 서비스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그 서비스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거나 사람들을 더 편리하게 도와줄 때, 쓸모있음과 살아있음을 동시에 느낀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나와 회사를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나도 엄연한 '나'이기 때문이다. 퇴근 후의 삶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를 선택할 때 신중하다.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 방향이 일치해야 윈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핏이 맞는 회사를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많이 지원해서 붙는 회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를 선택해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가치관이 나와 비슷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일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와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벤저스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뭉친 슈퍼히어로들의 집합체이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블랙 위도우 등 저마다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의 안보'라는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모여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한다.
스타트업도 '지구 지키기'와 같이 서비스의 탄생 동기나 존재 이유, 비전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멤버들이 있다. 나는 회사 멤버들이 우리의 비전을 명확히 알고, 각 분야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어벤저스 멤버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이언맨의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슈트, 토르의 망치, 헐크의 괴력처럼 각자가 회사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들은 다르지만, 맡은 분야에서 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최고의 동료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 나도 멋진 동료가 되어 → 다른 동료들에게 선한 자극을 주는, 그러한 순환 구조가 되었으면 한다.
혹시 먼 미래에 마카롱이라는 로켓에서 다른 로켓으로 환승하더라도, 마카롱에서 일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실력과 태도를 인증하는 멋진 어벤저스 마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복지제도 자율 출퇴근제. 혹자는 "출근도 늦게 하고 퇴근도 빨리할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우리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책임에서 비롯된다는 기본적인 사항을 등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혼자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앱 서비스를 만든다면 기획 - 검토 - 개발 - 테스트 - 홍보 등 하나의 프로젝트를 여러 담당자가 협업하여 완성해나간다. 하지만 한 명의 담당자라도 협의된 일정 내에 맡은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전체 프로젝트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많은 회사는 당연히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고 도태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마카롱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책임감을 중시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책임감은 맡은 바를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오히려 퍼스널 브랜딩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마카롱 멤버라면 스스로가 하는 일에 '나'라는 바코드가 찍혀 나온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내가 하면 뭔가 다르지'라고 여겼으면 한다. 시장조사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10개 기업을 조사할 때 나는 100개를 한다던지, 회의록을 작성할 때에도 한번 더 생각해서 비전문가 동료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쓴다던지 말이다. 바코드 마인드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업무라도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또한 프로젝트를 재검토해보니, 정해진 일정이 촉박해 스스로 원하는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면? 당당히 손 들고 근거를 들어 일정을 재조정하는 넓은 시야와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는 바코드가 찍혀 나오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낮은 것에 대해,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스타트업은 소규모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빈틈이 많다. 사람이 많은 대기업도 업무에 구멍이 날 때가 있는데 작은 스타트업은 오죽할까? 때문에 스타트업에서는 업무를 맡은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담당자도 동료들에게 그러한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는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동료라면 프로젝트가 실패했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이 프로젝트는 A가 주도한 거야? 그러면 우리 상황에서 할 만큼 했는데 어쩔 수 없었던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