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준호 Jul 19. 2018

16화. 단순하게 살기

Visual thinking 편, 1. 요약하기

1995년 1월 10일, 신생 방송사였던 서울 방송인 SBS가 사활을 걸고 광복 50주년을 특별기획으로 방영했던 24부작 드라마 '모래시계' 가 세상에 나왔다. 이 드라마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본방송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재방송을 내보내는 승부수를 던지며 평균 시청률 46%를 기록했고, 이를 보기 위해 본방송이 있는 날은 회식과 약속을 잡지 않고 일찍 들어가는 진귀한 현상 탓에 모래시계가 아닌 귀가시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SBS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모래시계' 중

당시만 해도 드라마왕국이라는 칭호를 듣던 MBC에서 삼고초려 끝에 '여명의 눈동자'를 성공시켰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를 모셔왔던 SBS는 MBC의 간판이었던 최민수, 박상원 두 배우마저 데려갔고, 결국 그 둘은 순간 시청률 74.4%를 기록했던 명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바로 주인공 태수(최민수 분)가 검사가 된 친구 우석(박상원 분)에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어렵게 한마디를 건네던 순간이었다.  "나 지'금 떨고 있냐?"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의 '미스터 션샤인' 역시 이병헌과 김태리의 연기 속에서 매회 명대사를 남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래시계의 이 장면은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러시아 유명가수 '이오시프 코프존'의 '백학'이란 곡과 더불어(방송에서는 원곡을 리메이크 한 '이연'이란 곡이 쓰였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드라마 속 명대사로 기억되고 있다. 


좋은 영화와 드라마는 명장면과 명대사를 남긴다. 때론 그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대사가 있기도 하고, 그 대사를 들으면 그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동영상식 기억이 아닌 사진이나 그림과 같은 이미지식 기억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 현상에 대한 논문지 중에는 인간의 기억 과정을 습득, 보유, 인출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특히 보유의 단계는 조작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미지화나 부호화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 뇌는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높은 효율을 위해 이미지화라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방송인들은 그 긴 대본을 어떻게 외우나요?

스피치를 잘 하기 위해 자신만의 대본 작업이 필요할까요?


"한준호 씨? 자리로 좀 오세요" 보통 보직 부장의 호출은 프로그램 대체 투입이나 신규 프로그램 오디션 내지 정부나 타 부서 지원과 같이 일과 연관이 있었기에 종종 이렇게 보직부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을 때면 내심 기대감이 있곤 했었다. "한준호 씨, 이번 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최현정 씨와 MBC를 대표해서 나갔으면 하는데, 다른 일정 겹치는 것 없지?"

제 36회 방송대상 시상식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내가 방송을 하던 시기에 가장 진행해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은 방송의 날 공식 행사인 '방송대상 시상식'이었다. 매년 진행방식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제 36회 방송대상 시상식>은 KBS, MBC, SBS에서 남녀 진행자가 1부, 2부, 3부를 나누어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내 꿈이 이루어지던 날이었다.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무대 뒤에서 각자 자신의 마이크를 들고 사전 공연 소리를 흘려들으며 서있던 순간의 긴장감과 성우의 소개를 받고 무대가 열릴 때 보였던 선. 후배 방송인들의 모습에 가슴 설레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추억 때문인지 종종 강의시간에 이 날의 대본과 장면들을 활용하곤 한다.


방송대상 시상식 대본 중

"여기 보이는 자료는 제가 사용했던 대본입니다. 프로그램에 따라서 대본의 양은 차이가 크지만, 이런 대본을 수십 장 받아서 진행한다면 어떻게 외워야 할까요? 두 사람이 한 번씩 읽어볼까요?" 대부분 이 대본을 읽혀보면 조금씩 긴장은 하지만 잘 소화해내곤 한다. "잘 읽었습니다. 자 이제 대본을 보지 말고 조금 전에 했던 대사로 진행을 해볼까요?" 순간 '지적을 받고 읽은 것도 억울한데 왜 나한테 이런 것 까지 시키지'라는 반응이다.


"그럼 두 사람에게 다시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한준호'로 되어 있는 대사를 한마디로 줄이면 어떻게 될까요? 남학생?"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기에 '(공로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로 잘 줄인다. "잘했습니다. 그럼 여학생은 '최현정'씨의 대사를 어떻게 한마디로 줄일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대사를 줄이는 것이 어렵다. 전체 맥락을 보지 않고, 내 질문이 나가는 순간 '최현정'의 대사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죠? 그냥 저도 축하드립니다.입니다. 이런 식으로 줄이면 대사가 이렇게 오고 가겠죠.  (한) 공로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최) 저도요. (한) 축하공연이 있죠? (최) SG워너비입니다." 


긴 대본을 볼 때 하나하나 읽고 외우려 하다 보면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고, 특히 갑작스러운 상대의 애드리브에 당황해서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순서와 놓쳐서는 안 되는 단어만 형광펜으로 표기해 놓고 큐카드를 하나씩 이미지화시켜놓는 것이다. 


방송인들은 긴 대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순서와 핵심 단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문장을 외우는 부담을 없앨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15화. 1 + 0 =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