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Thinking 편. 3. 경험의 중요성
"아나운서에게는 대본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빗대어 멘트를 풀어가는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각자 어떻게 창의성을 개발하는지 말씀해 보세요." MBC 공채 최종면접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질문이자, 내 인생을 바꾸었던 질문이었다. '창의성', 그 단어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 과연 무엇이 창의성이고, 요즘 이야기하는 창의적 사고와 창의적 인간이란 과연 그 실체가 무엇일까?
스피치 영역에서 아이디어는 무척 중요한 분야이다. 연설이나 발표로 대변되는 스피치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방향과 활용 가능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가장 설득력 있는 레토릭을 갖춰 구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 어떤 주제의 책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면, 이를 목차로 구성했을 때 심리적으로 책의 반을 끝낸 느낌이 들곤 한다. 이런 점에서 내 인생을 바꾸었던 질문인 '창의성'이 스피치에도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Steave Jobs)는 '어떤 무엇인가와 다른 무엇인가를 연결하는 것이 창의성이고, 경험과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창조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스피치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발성을 할지, 어떻게 발음을 고칠지 보다 융합적 사고와 비주얼 싱킹(Visual Thinking)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스피치의 본질이 '전달'이고, 단순히 좋은 발음과 목소리 등으로만 전달력을 높일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스피치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구성과 아이디어, 즉 창의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옆의 그림은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 6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Buffer] 블로그에 공유되자마자 1,000회 이상 리트윗된 이미지이다. 우리는 흔히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캘리포니아 공과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능은 뇌의 특정한 부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일반적 지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뇌 속의 여러 영역과 이들 사이를 연결해 다양한 처리를 하나로 통합하는 능력'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는데, 이는 결국 연결이 창조성을 높이며, 연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경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의 이미지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창의적 사고를 위해서는 뇌 속의 경험이라는 점과 점을 연결하는 것이 지식을 쌓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준호 차장은 화이트보드 하나만 있으면 천하무적이에요." 2014년, 한중 FTA 중 미디어 분야 실무협상 안을 준비하던 내가 화이트보드에 각 안들을 도식으로 그리며 설명하던 순간, 같이 회의를 하던 타사의 한 선배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한차장이 워낙 해 본 게 많아서 아이디어도 많고 상황을 쉽게 정리하는 것 같아" 옆의 선배가 거들며 말했다. 미디어 분야의 협상이라면 당연히 사업부서에 있거나 기획부서에 있는 선배들이 십수 년간 쌓은 지식으로 나보다 더 낫겠지만, 협상 안을 이끌어 가는 건 늘 나였던 이유는 그분들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경험에 기반하고 있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믿음은 지식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만 한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사성어 중,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마다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 춘추시대 제(齊) 나라 환공(桓公) 때 당시 재상을 지내던 관중(管仲), 습붕(隰朋)과 함께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나설 때 생긴 일화에서 온 말인데, 당시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그 해 겨울의 끝자락까지 가게 되었고, 병마가 모두 피로에 싸여있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던 대군은 피로한 데 겹쳐 길까지 잃고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그때 관중(管仲)이 나서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겠군요."라며 오랜 세월 같이 한 늙은 말 한 필을 풀어놓고 전군이 따르게 하니 곧 늙은 말이 큰길로 안내를 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산길을 행군하던 도중 군사들이 목이 말라할 때 습붕(隰朋)이 나서, "개미란 여름에는 북쪽에 집을 짓고, 겨울에는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는데, 그중 한 치 정도 높이의 개미집 아래를 일곱 자 정도 파 들어가면 물이 있을 것이다." 하여 병사들이 그리해 보니 정말 그 아래서 샘물을 발견하였다 한다. 이를 두고 한비자(韓非子)는 그의 저서에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요즘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의미는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로도 쓰이고 있다.
우리에게는 삶의 궤적에서 오는 직접 경험과 영상, 책, 수업 등으로 얻는 간접 경험이 있다. 그중 간접 경험은 대부분 지식으로 쌓이고, 직접 경험과 함께 우리가 사고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문제는 반복하지 못하는 지식은 그 자리에 있지 못하지만, 오감으로 체감한 경험은 실수와 성공을 통해 오래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 대학과 사회생활을 하며 겪었던 직접 경험들을 가볍게 도식화해 보면, 위와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데, 이러한 경험과 그 안에서 쌓인 지식들은 어떠한 문제가 도래했을 때 해결책을 내놓는 아이디어로 작용하기도 하고, 연설이나 강연 등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피치를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잘 전달하겠다는 마음가짐'임을 이 글들을 통해 강조해 왔다. 이와 더불어 전달하는 방식으로 레토릭을 설명했고, 전달하려는 내용과 관련해서 시각적 사고에 기반을 둔 이미지 싱킹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실패와 작은 성공들이라는 좋은 경험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이미지화하고 있다. 한 편에서는 기억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이미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들을 통한 융합적 사고가 결국 좋은 아이디어로 연결된다. 말하자면, 좋은 스피치를 위해서는 발성 연습이나 기술적인 요령이 아니라 평소 우리가 겪는 사소한 경험마저 이미지화하려는 작은 노력인 것이다. 명연설, 스피치의 달인과 관련한 글과 책들이 나온다. 그들의 연설이나 프레젠테이션을 분석해 그것이 정답일 수 있다는 제시인데, 생각해 보면 분석은 후속적이다. 명연설자들은 그들이 분석한 연설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최소한 명연설이나 좋은 스피치를 위한 공식 같은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길 바라며, 탄탄한 기본기와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스피치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좋은 스피치를 위해서는 발성 연습이나 기술적인 요령이 아니라 평소 우리가 겪는 사소한 경험마저 이미지화하려는 작은 노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