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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Aug 12. 2018

25화. 경청의 에너지, E=mc^2

상대에 대한 호기심, 경청 

"Can we take a picture together?"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캐서방'이라고 불리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트레저헌터'라는 영화의 홍보를 위해 한국에 방문했던 2004년 초겨울 무렵이었다. 당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W호텔이라는 곳에서 진행되었던 언론사와의 공식 인터뷰와 역시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용산 CGV에서의 레드카펫 행사로 구성된 패키지 인터뷰였는데, 신입사원으로 연예 중계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하고 있던 나는 할리우드 스타를 만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오후 2시 무렵, W호텔에서 마련한 인터뷰 룸 밖으로는 타사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 순서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생각보다 큰 체격에 푹신한 의자에 깊숙하게 앉아 지긋이 나를 쳐다보던 그는 내가 앉으며 손을 내밀자 "Nice Suit! 한국은 처음인데, 한국인들의 옷차림에 놀랐습니다.”라며 화면 속에서 보던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뉴스를 막 마치고, 입고 있던 정장 차림 그대로였다. 그날의 언론 관심사는 얼마 전 그와 결혼한 한국인 아내 '엘리스 케이지(김용경) '이 함께 왔는지였는데, 만약 같이 왔다면 그날 저녁 용산 CGV 레드카펫 행사에서 함께 나타날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제보만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고, 공식 인터뷰에서는 아내에 대한 질문은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저는 한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MBC에서 주말 뉴스 앵커를 맡고 있는 한준호입니다. 저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제 아내가 당신 영화라면 빼놓지 않고 보는 열혈 팬입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그의 태도가 바뀌며, "저도 당신의 뉴스를 본 것 같네요. 오늘 아침 뉴스를 하지 않았나요? 제 아내도 당신의 팬입니다." 라며 자연스레 아내의 이야기로 인터뷰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내 팬이라는 말을 믿진 않았지만, 내 아내가 그의 팬이라는 것과 내가 그의 영화를 열광적으로 찾아봐 그의 필모그래피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당신 이름이 마블 히어로 루크 케이지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나요?" 순간 그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우리의 대화 주제는 '내셔널 트레저'라는 영화가 아닌 '니콜라스 케이지' 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인터뷰에 대해 배워온 대로 내가 질문하려고 준비한 것을 버리고,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며 그가 가진 배우관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interview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와 스텝들과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을 때였다. "Mr. Han , Can we take a picture together? (한준호 씨, 우리 같이 사진 좀 찍을 수 있을까요?)" 니콜라스 케이지가 스텝 몇 명과 나를 뒤따라 나온 것이었다. 순간 스텝들의 "오~"하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니콜라스 케이지' 측 스텝이 들고 있던 일회용 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다. "명함 주시면 제가 사진을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당시만 해도 스마트 폰이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라 인화된 사진으로 밖에 받아볼 수 없었기에 명함을 주고받고 차량으로 이동했다. "한준호, 오늘 무슨 일 날 것 같은데?" 차량에 오르자 PD 선배가 고무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녁 무렵, 새로 생긴 용산 CGV의 야외 계단에는 레드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고, 계단 옆 포토라인에는 모든 언론사들이 모여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늘 아내랑 같이 온 거야 안 온 거야?" 요즘 같이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있었다면 정보를 얻는 것이 좀 쉬웠을 텐데, 그 시절만 해도 전화통화가 유일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었기에 거기 모인 언론사 취재원들은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드디어, '내셔널 트레저' 주인공들이 한 명씩 레드카펫에 오르기 시작했다. 첫 할리우드 배우 취재라 한 명 한 명이 신기했지만, 조금 형식적인 인터뷰를 진행했고, 마음 속으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등장만을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계단 밑에서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고, 그가 등장했다. 그것도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그의 한국계 아내 '엘리스 케이지'와 함께. 그런데, 순간 PD 선배가 이야기하였든 무슨 일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계단을 올라오며 아내와 함께 손을 흔들면서도 어떠한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그와 인터뷰를 했던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드러나게 한 채 몸을 포토라인 밖으로 조금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내와 귓속말을 주고받던 그는 다른 언론사를 지나 내 앞으로 아내와 함께 나타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Nice to see you again Mr. Han" 그가 내게 독점을 준 것이다. 뒤에 카메라맨 선배의 "우와!~"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날 레드카펫 인터뷰 영상은 MBC 독점으로 타사에서 우리의 인터뷰 자료를 가져가 쓰도록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에게 좋은 인상을 줬던 것은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의상이 아니라, 형식적인 인터뷰를 버리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그가 한국계 아내 '엘리스 킴'과 헤어졌고, 큰 씀씀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며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영화 출연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망가트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아프지만, 당시 대스타였던 그와의 만남을 통해, 신입사원 연수 시절 배웠던 '인터뷰란 듣는 것'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던 기억이 난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만으로 인생의 80%는 성공한다.' 앤드류 카네기 (Andrew Carnegie)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8월 11일은 미국 석유왕 록펠러와 함께 대표적 흙수저 출신의 기업가인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1919년 그의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은 날이다. 카네기는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3살에 가족과 함께 고국인 스코틀랜드를 떠나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이민을 가게 된다. 이후 학업이 아닌 면직물 공장과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을 거치다 어느 날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 피츠버그 지부장이었던 토마스 스콧이라는 사람의 눈에 들게 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철도회사 근무 시절, 그는 침대차 회사에 투자한 일이 큰 이익으로 돌아오면서 그를 바탕으로 카네기 철강회사를 설립하고, 이후 모건계 제강회사와 합병하며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차지하게 되는 '유에스 스틸(US Steel)'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지금의 시대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자신의 부를 사회를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산 4분의 3을 사회에 환언하고, 미국과 영국에 2,500여 개의 도서관을 건립했다. 1891년에는 세계적 공연장인 카네기홀을 개관했고, 1900년에는 카네기 멜론 대학의 전신인 카네기 공과대학을 설립하는 등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기업가였던 것이다.  그는 인생을 통해 세상사람 누구나 부러워 하는 성공에 이르며 인생 성공의 80%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데서 왔다고 말하고 있다.


'Here lies a man who was wise enough to bring into his service men who knew more than he'

(자기보다 우수한 사람을 자기 곁에 모을 줄 알았던 사람 여기 잠들다.)

-앤드류 카네기 묘비 명   

                                                                                                                           

카네기가 남긴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우리는 '경청'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경청'에는 두 가지의 한자어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敬聽(공경 경 들을 청)'이다. 이는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청의 한자어인 '傾聽(기울 경 들을 청)'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Listening Closely'로 주의(注意)를 기울여 열심히 듣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에서의 경청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나 정서에도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한 것을 상대에게 피드백해 주는 것까지 범위를 확장한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경청은 곧 '소통(疏通 소통할 소, 통할 통)'이라 할 수 있다. 

E=mc^2를 처음 공개할 때 사진

1905년, 어느 쾌청한 봄날 아침이었다. 한 남자는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모습으로 무척 흥분된 듯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대여섯 주 만에 38장으로 이루어진 얇은 논문 초안 하나를 완성했고, 이 논문은 몇 주 후 3장의 보충 논문과 함께 그동안 알고 있던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송두리째 바꾸어놓게 된다.  

E = mc^2라는 공식을 내놓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다.

 

독일 태생의 유태인으로 가족을 따라 이탈리아에서 살았으며, 스위스에서 학업을 마쳤고, 베른 특허청에서 공무원으로 생활했던 그는 이론보다는 실증을 중시하던 당시 과학계의 풍토를 깨고, 스스로 이야기 한 '내 인생에서 가장 운 좋은 착상'이라고 표현한 것 처럼,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로 시작한 논문 하나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의 핵심 주장은 에너지는 질량이라는 것이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독일 자택 방문시

상대성이론과 시공간에 대한 이론으로 역사에 '천재'의 대명사로 기록되고 있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부스스한 머리와 그가 보인 괴이한 행동마저 천재의 집중력으로 비치게 만들었지만, 브랜드화된 그의 이미지 뒷면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다른 모습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그의 엄청난 인맥이다. 아인슈타인의 인맥을 잠시 나열해보면, 벨기에 여왕, 미국 대통령, 인도의 시인 타고르, 찰리 채플린,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통령 등이 있다. 한 일화에 의하면, 유태계 과학자로 1차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이 폭탄에 쓰이는 아세톤을 대량생산 할 수 있는 비법을 알아내 전쟁의 큰 공신이 되었던 하임 바이츠만(Chaim Weizmann) 이스라엘 대통령은 1952년 아인슈타인을 차기 대통령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과연 어떻게 매일 연구에 몰두했을 것 같은 그에게 이런 인맥이 만들어졌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건 바로 아인슈타인이 가지고 있는 '경청'의 힘 덕분이었다. 그의 호기심은 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잘 듣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었으니, 누가 그와의 대화를 통해 선뜻 친해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기심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중략)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그를 물리학의 거장으로 만들어 준 '질량이 속도의 터널을 지나면 거대한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E=mc^2를 호기심을 경청으로 풀어냈던 아인슈타인의 행보를 통해, 소통의 공식으로 다시 해석해보려 한다.


경청의 Energy = mention * cau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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