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가는 밤12시,
저는 짝꿍과 산책을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급하게 귀국한 뒤로 여행을 계획했던 시간동안만큼은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아보고자 결정하면서 생긴 둘만의 습관 중 하나입니다. 출근과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다보니 생활패턴이 느슨해지면서 생긴 습관이기도 하지만, 저는 요즘 이 시간이 가장 좋습니다.
직장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으면 퍼지기 일쑤였습니다. 밖에서 하루종일 에너지를 쏟고 왔는데 다시 차려입고 집밖을 나가는게 참 어려웠습니다. 물론, 정신력의 차이였습니다.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축구를 하는 날에는 정말 희안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만약 저희 부부가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더라면, 과연 지금의 이런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아마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꼽으라면 '짝꿍과 세계여행을 떠난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2세를 갖기 전 짝꿍과 저만의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시간을 보낸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24시간 내내 붙어다니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됨으로써 어떻게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직장을 다닐 땐, 제가 짝꿍과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생활 외 시간과 운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내와 붙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붙어있기만'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내와 같은 공간에는 있지만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이 알게모르게 줄어들고 있었는데, 그때 부족했던 대화의 시간들을 여행의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부터 다시 채워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짝꿍과 세계여행을 떠나고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둘이 어떻게 24시간 동안 같이 있어?", "몇 번 다퉜어?"와 같은 질문들이었습니다. 저희도 당연히 사람인지라 지치고 힘들때마다 몇 번 다투기는 했지만, 계획한 여행 기간 동안은 둘이서 어떻게든 죽이되든 밥이되든 지내야했기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다툰 뒤에는 최대한 빨리 풀어주려고 한 번 더 안아주면서 다투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소중한데 기분이 다운된 채로 지나가는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으니까요.
덕분에 여행이 끝난 지금도 짝꿍과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행 때와는 또다른 고민들과 어려움이 닥칠 때도 있지만, 이제는 헤쳐나가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잘 극복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짝꿍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조용한 밤길을 오롯이 걸으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순간 단풍잎이 떨어지던 퀘백의 한적한 골목길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기분좋은 사실은 이 분위기를 공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제 옆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데, 짝꿍과 찰싹 붙어있는데다 내년 1월에 태어날 새로운 가족 덕에 굶어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