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22
준(屯)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국면을 타개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앞을 보아도 또 뒤를 보아도
그저 캄캄한 낭떠러지이다.
최고 권력자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앞과 뒤를 연합군의 세력이
꽉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는 정권을 유지하려면
민중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국면전환 거리를 찾아야 한다.
최고 권력자는
상황을 비켜 갈 수 있는 전환 거리로
하층부의 이제 막 커나가는
앳된 소년을 주시한다.
그 소년은 앉은자리에서
그냥 주저앉으려는
여성들의 보수적 분위기를 깨기 위해
‘개혁해야 희망이 있다’라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었다.
최고 권력자는
그 소년을 잘 지도해
여차하면 후계자로 키울 생각이지만
믿기에는 갖추어진 것이 너무도 빈약하다.
한마디로 아무런 검증도 안 된
소년에 불과했으니까.
최고 권력자는
검증의 잣대만 걸쳐놓고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이때 주역(3-5)은 이렇게 말한다.
“구오 씨, 그 기름진 땅에서
풀의 싹이 간신히 나오는군요,
적게 참고 견디면 길하고
크게 참고 견디면 흉합니다.
[구오(九五) 둔기고(屯其膏)
소정(小貞) 길(吉) 대정(大貞) 흉(凶)]”이라고.
둔(屯)은 ‘풀의 싹이 이제 간신히 나다’라는 뜻이다.
고(膏)는 ‘기름진 (땅)’이란 뜻이다.
그러면 둔기고(屯其膏)는
‘그 기름진 땅에서 싹이 비집고 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기름진 땅’은 은유의 표현으로
전쟁의 후유증을 겪지 않은
하층부를 말한다.
앳된 소년 영웅은
하층부의 기름진 땅에서
혜성같이 나타났다.
연합군의 침공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상층부와는 완연히 다른.
최고 권력자의 눈으로 볼 때는
한없이 부럽기만 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그곳에서.
주역의 말한 뜻은 이렇다.
‘이봐요, 구오 씨,
많은 민중에게 희망을 줄,
국면을 바꿀 뚜렷한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오로지 그 소년 밖에
희망이 될 인재가 없는데
왜 그렇게 앞뒤를 재고만 있습니까?
참고 기다리는 것을 짧게 해야 길합니다.
만약 오래 참고 기다리면 흉합니다’라고.
위 구절의 속뜻은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두지 말라는
뼈아픈 소리이다.
왜 장고(長考)는 악수를 부를까?
고려할 변수는 너무 많기에
그러한 변수를 다 챙기다 보면
시간만 마냥 흘러간다.
또 여러 변수를 모두 충족시킬
대안을 고르다 보면
안(案)은 뚜렷한 특색도 없고
그저 두루 밋밋하게 될 것이다.
고민할 것이 없다.
애초에 생각한 바대로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는 안을
택해야 한다면 과감히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도 고민하는 이유는 무얼까?
후일 소년 영웅이
자기 자리를 넘보지 않을까에
온 신경이 가 있어 불안하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는 나 이외는 없다.’라고
권력에 옹고집처럼 매이면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국면전환을 위한 소년의 쓰임새는
무용하다.
최고 권력자는 권력의 무게추가
비록 소년 영웅에게로 옮겨 갈지라도
그 소년을 중용하는 의사결정을
늦지 않게 서둘러야 한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