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생각나게 하는 도(道) 2
마디 1
그녀는 길을 가다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동냥하는 사람이 안쓰러워
생활에 보태 쓰라고
몇 푼 안 되지만 친절을 보였다.
그러나 동냥하는 그 사람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대꾸가 없을뿐더러
외려 그녀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왜 대꾸가 없을까?
돈이 적다는 뜻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부끄러운 나머지 종종걸음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뒷덜미가 켕기는 기분이 들어
힐끗 뒤를 돌아다보니
그 동냥하는 사람은 험상궂은 사내로 변해
그녀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쫓기는 사람이 되어
죽을 둥 살 둥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온 힘껏 달리고 달렸다.
용케 위험한 상황을 면한 그녀는
그날 이후 무섭고 두려움에 떨어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대꾸도 없이 째려보았던, 또 쫓아오던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디 2
주역은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이런 뜻으로 말한다.
“육삼 씨, 배 속의 태아처럼 푹 싸여 있어
대꾸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包)
손에 음식을 들고 권했다가
스스로 부끄러워하다가 미워하고
또 두려워하기도 했군요(羞)”
위 지문을 가만 들여다보면 뜻은 이렇다.
‘이보게 육삼 씨,
대꾸가 애초에 불가능한 사람에게
괜히 대꾸가 없다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급기야 두려워하기도 하니
이게 누구의 잘못인가,
바로 육삼 당신의 잘못이 아닌가?’
육삼은 괜히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키워
고통으로 이어지게 했다.
주역은 이런 사실을 직면시켜
육삼의 얼굴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마디 3
수치심(羞)은 어디로 튕겨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수치심은 부끄러운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론 부끄러움이 심하면 죄의식을 낳고
또 미워하는 감정으로 변하기도 한다.
급기야 두려운 감정 즉 공포심으로 커지기도 한다.
예컨대, 주역에 나오는 그녀(육삼)는
책임자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뭇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그녀는 그네들끼리만 쉬쉬하는 틈바구니에서
주류에도 못 끼고 주변만 빙빙 도는 처지이다.
그녀는 그런 왕따 받는 신세가 서러워
뭇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
먼저 나서서 친절을 베푼다.
그녀는 왕따 받는 신세를 걱정하여
습관처럼 친절을 베풀다 보니
이제 아예 친절이 몸에 배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먼저 스스로 행한 친절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고통을 받으니.
마치 심리학자 아들러(Adler)의 불합리한
‘사적 논리 3단 논법’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① 또 왕따를 시키려고!
(나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한다)
② 또 대꾸도 없이 거절하네!
(세상에는 나를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③ 두고 보겠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친절을 베풀어도 대꾸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위 ①②③과 같이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며
결국은 쫓는 자를 상상 속에 만들어
실제로 쫓김을 당하고 있다.
주역은 12괘의 괘사 상(象)에서 이렇게 말한다.
“검덕피난(儉德辟難)”이라고.
즉 ‘베푸는 것을 줄이고 어려움을 피하라고’
왕따 받는 신세를 걱정하여
습관처럼 내민 친절에 스스로 고통받지 말고
남에게 베푸는 것 즉 친절을 줄이라는 뜻이다.
이 경우에 도(道)는 검덕피난(儉德辟難)처럼
남에게 행하는 친절을 줄이고
그 에너지를 자신에게 올곧게 쓰라는 뜻이다.
자신을 아끼며 토닥거려 주면
왕따에 스스로 대응하는 힘
즉 자존감이 무럭무럭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