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행을 정리하는 법
마침내 작년 3월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제각각의 모습을 보여준 지 일 년 반 가량이 되었습니다.
첫 글인 여행을 정리하는 법으로 시작해 스무여덟 편의 다른 주제와 형식의 여행기를 썼고 비로소 '브런치 매거진 <비전공자의 화장실에서 읽는 여행기>'로 연재하던 글을 마무리하고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행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함께 여행하고 또 멀리서 응원해주고 그리고 제 글을 재밌게 읽어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무한히 감사합니다. 브런치 매거진 제목인 <비전공자의 화장실에서 읽는 여행기>역시 제 글을 읽는 친구들 중 한 명이 "너 글 화장실에서 읽었는데 좋더라."라고 말해준 것을 계기로 긴 이야기가 아닌 짧은 여러 이야기를 써야겠다 생각하여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비전공자라는 말은 여행 그리고 여행을 글로 남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공대생이 여행기를 쓰게 됨을 나타내고 싶어 덧붙였습니다.
여권을 갱신하면서 첫 글을 쓸 땐 내심 앞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다녀온 여행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더 써야 할 여행이 늘어났습니다. 처음 부렸던 엄살을 반성하면서 제가 제 생각보다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여행을 다닐 때에는 기존에 갖고 있던 어떤 정체성이 아닌 오직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만나고 보일 수 있어서 훨씬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짧게 덴마크를 다녀왔는데, 교환학생 생활 동안 살았던 도시에 6개월 만에 도착했지만 시간은 덴마크를 마지막으로 떠나던 순간에서 이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에도 처음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그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심지어는 세레메티예보 공항 어디에 어떤 커피숍이 있었는지 까지 기억이 날 정도였으니 사람은 공간에 기억을 담아둔다고 말할 법합니다. 저는 여행을 통해서 이곳저곳에 기억을 흩뿌려두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다시 마주한다면 즐거운 추억이 되어 떠오르겠지요.
길든 짧든, 근처로 떠나거나 멀리 비행기를 타거나 모든 여행이 즐거운 기억 하나씩 어딘가에 심어 두고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