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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Jun 19. 2018

북적이는 여행

오토바이와 쌀국수의 도시

 호안끼엠 호숫가, 마메이 스트리트, 그리고 롯데센터 하노이 앞쪽까지 즐비했던 오토바이와 걷고 또 걸어서 먹으러 다닌 하노이의 맛집들 여행기. 

 때는 바야흐로 갓 수능이 끝난 2015년 겨울 고등학교 친구 중에 집이 베트남으로 이사를 간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여행을 하기로 하고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에 처음 혼자 몸을 실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 짐이 마지막으로 그것도 한참이나 늦게 나오는 바람에 공항 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친구와 서로 한 시간 이상 기다렸지만 어쨌거나 친구는 '반미'하나를 쥐어주며 베트남 여행의 시작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최근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녀온 음식점을 구글에 검색에 봤는데, 지금은 꽤나 유명해져서 한국어 메뉴판도 생기고 한국어로 친절히 주문하는 법 까지 적혀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제가 하노이를 다녀온 지 오래되어서 많은 것들이 변했겠지만 그때 제가 가서 느꼈던 곳들의 북적임을 지금도 여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친구네 집이 있었기에 세상 편하게 다녀온 여행이기도 했지만 처음 동남아의 오토바이 부대를 뚫고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노점에서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낀 것은 사람 사는 냄새였습니다. 여유로움과 분주함이 공존했던 세 곳의 장소에서 기억을 더듬어 여행기를 쓰려고 합니다.


첫 번째 장소는 호안끼엠 호숫가의 시장이었습니다. 친구네 아버님의 기사인 Mr.Sun의 자가용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은 꽤나 시장 안쪽까지 들어가 저와 친구를 내려주었습니다. EBS의 세계견문록에서 백종원 셰프님이 다녀온 하노이 편을 보고 온 터라 이곳이 맛집들의 성지일 거야 라는 느낌이 막 스멀스멀 올라왔죠. 그렇지만 차에서 내리고 얼마 후 다짜고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클 K 편의점에서 급하게 우비를 샀는데, 비가 오니깐 우산을 더 싸게 판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왠지 경제학 이론을 거꾸로 가는 것 같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문구입니다.

 호안끼엠의 시장을 돌면 우선은 우리나라 전통시장처럼 아동복을 팔거나 저렴한 짝퉁 신발이나 가방을 파는 매장이 즐비합니다. 이곳이 관광지만이 아닌 (물론 서양인 관광객들이 어느 골목에나 많았지만요.) 삶의 터전임을 알게 해주는 각종 그릇가게, 생선가게들도 있어 좋았습니다. 호숫가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고 old quartar로터리에는 반가운 프랜차이즈도 있었고 길거리에서 빵이나 과일을 파는 바구니를 이고 가는 할머니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발길을 붙잡는 카페들이나 화랑들이 있고 노점들과 여행사가 공존하며 현지인과 여행객이 섞여있지만 섞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저희는 노점에서 찐빵 두 개를 호호 불며 먹은 뒤 작은 화랑을 구경하고 (돈이 없어서 눈칫밥을 한가득 먹고) 콩 카페에 들어가 코코넛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부터 꼭 먹고 싶었던 제대로 된 쌀국수의 염원은 분짜 닥 킴에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절인 파파야를 이용해 국물을 만들어 달콤한 맛이 나면서 생선장인 느억맘 소스로 간을 하고 돼지고기를 그을려 넣어 감칠맛을 더했습니다. 면과 야채는 따로 서빙되어 나오는데 야채가 마치 쌈을 싸 먹으라는 것 마냥 소쿠리에 수북하게 나옵니다. 사실 한국에서 고수를 먹은 적이 없어 고수가 섞여있다면 빼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눈으로 구분이 안가 이것저것 넣어 먹다 보니 아! 이 향이 고수구나 하는 채소가 있었습니다. 고수 향은 조금 오묘한 민트향 내지는 산초 향이었습니다. 그러곤 한국에 돌아와선 고수 없이는 쌀국수를 먹지 못하는 입이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분짜를 맛봤지만 아직 그 날 먹은 분짜만큼 고기 육즙과 파파야 국물이 잘 어우러지는 곳은 못 찾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거리는 짱 띠엔 거리였습니다. 사실 점심으로 퍼 10에서 pho쌀국수를 먹고 '성요셉 성당을 들렀다가 오페라하우스까지 걸어갔던 길'로 기억하고 있었어서 방금 구글 지도에서 거리 이름을 검색하고 왔네요. 퍼 10에서는 연한 소고기의 맛과 씹는 질감을 모두 느끼고 싶어 '타이 친'을 주문했습니다. 타이가 반만 익힌 고기 친이 완전히 익힌 고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 치킨식으로 반반을 주문한 셈이지요. 개인적으로 둘의 차이를 크게 느끼진 못했지만 라임은 언제나 얼마든 짜 넣을 수 있도록 테이블에 쌓여 있었고 상큼한 라임즙과 톡 쏘는 고수 향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프랜차이즈 쌀국수는 간혹 고수보단 다른 양파나 파맛이 올라와 실망스러웠던 적이 있었거든요.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로 가는 긴 길에서 다양한 군것질 거리와 쇼핑센터 그리고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토바이와 함께 길을 건너 만난 기찻길 골목에서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먹는 국수 천막이 있었습니다. 그 위로 올라온 연기가 하늘이 된 느낌이 좋았습니다. 미처 그땐 한번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지금은 한 번쯤 그곳에 앉았다 와볼걸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 저희는 길에서 화롯불에 옥수수를 굽는 상인을 만났습니다. 별다른 양념 없이도 그럴싸한 단맛을 내는 게 신기했습니다. 옥수수 껍질은 두꺼워서 손잡이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옥수수 한 송이씩 손에 들고 주상복합 단지들을 지나가다 보면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서 보았던 빵 바구니를 메고 가는 어머님들도 보입니다. 이삼사층씩 올라간 건물 베란다에 갖가지 빨래가 널려 있는데 이 매연 속에서 무사할까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한국도 미세먼지가 만만찮기에 남 걱정할 처지는 못되네요.. 가는 길에 친구가 추천해 준 아이스크림도 먹고 호기심에 코코넛 주스도 하나씩 사서 열심히 빨대로 긁어먹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어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마치 옛 베트남의 식민지 시절에 지어졌을 유럽식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물론 가로수는 동남아의 식생답게 야자수가 많았지만요. 그래서 유럽에 온 느낌 한번 내 보고자 카페에 들어가 모히또에 피자를 시켜 먹고 베트남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날 초동 시장에 들어 시장 구경을 했었습니다. 사실 거의 장이 마무리될 즈음이어서 몇몇 장난감 가게 천막 가게와 야외에 짝퉁 닥터*레 헤드셋을 파는 점포 그리고 과일상인이 다 였습니다. 하지만 메인은 이쪽 시장이 아닌 마 메이 스트리트입니다. 낮동안 활발히 일을 했을 오토바이들은 길에 주차되어 있고 어둠이 내린 골목에 간판들이 불을 밝히고 야외 테이블들이 밖으로 나오면 이곳은 북적이는 맥주 거리이자 포차 거리가 됩니다. 저는 미리 알아봐 둔 xuan xuan이라는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사실 음식 이름보다 47 ma may인 주소가 좀 더 유명해 주소를 물어가면 찾아가기가 수월했습니다. 고기 굽는 기름 냄새가 밖까지 진동을 하는 이곳은 야채와 함께 베트남식 BBQ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불판이 있는 테이블은 한국에만 있는 고유한 문화인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이곳에서도 테이블 가운데에 불판이 있습니다. 고체연료에 불을 붙이고 은박지를 깔아 세팅을 마무리하자 가지, 오이 그리고 피망과 같은 야채와 돼지고기가 나옵니다. 이제부턴 우리만의 시간입니다. 은박지가 타면 갈아주니 마음 놓고 고기에만 집중을 해 봅니다. 야채가 노릇노릇하게 익고 달짝지근한 양념이 되어있는 고기는 두꺼워 살짝 타듯이 구워주면 불고기나 양념갈비처럼 바로 가져가서 먹어도 맛있고, 바게트를 시킨 다음에 반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바게트를 굳이 샌드위치로 안 만들고 부욱 찢어 육즙에 적시고 야채와 함께 먹어도 좋습니다. 이때 시원한 맥주가 도와주면 완벽한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우비를 입고 맞이한 베트남의 시장, 하늘이 개인 뒤 청명한 하늘 아래 색색들이 빨랫감을 내걸던 좁은 골목길이 그러합니다. 쌀국수의 맛도 그때 여행 이후로 기억에 남아 지금도 전 세계의 국수를 먹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곳을 여행하고 또 글을 쓰는 동안 하노이는 많이 변했겠지만 그때 하노이의 북적이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제게는 여행의 또 다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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