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sser panda
Jun 02. 2021
일이 곧 투자고 투자가 일이다.
ㅡ누가 잘못한 거지?
이사가 우리에게 물었다.
사업 공공입찰 서류 마감일 시간을 정확히 지켜 퀵으로 부랴부랴
보냈던 관계자 모두는 입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우리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했는지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다.
한동안 정적과 눈치 보기가 시작됐다.
서류 제출에 참여한 10여 명의 관계자들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마감기한 시간까지 아슬아슬하게 하긴 했다.
너무 급하게 제출한 탓일지도 모른다.
항상 서류는 기한에 다다라서야 수정할 사항들이 계속 생겨나고 마니까.
포장을 늦게 한 사람의 탓이네, 마감기한 시간을 몇 분 늦게 도착한 탓이네,
초고를 느리게 전달한 사람의 탓이네, 수정을 잘못하고 발견한 사람 탓이네
말들이 많았다.
모두의 잘못이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누가 될까?
서류에서 꼭 빼지 않아야 할 조항을 취합해서 2차, 3차 사람의 눈을 거쳐서 확인하고
작성한 결과인데도 중요한 사항을 놓쳤다니…
최종 책임자는 부장이었다.
차장이 참여자들을 둘러보며 서류를 꼼꼼히 보더니
신입과 나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연설이 산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말을 마구 늘어놓더니만
결국 신입과 나에게 처음부터 잘못 기획된 서류였다며 우리 탓을 했다.
신입과 나는 서로 쳐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신입과 나는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잘 알지도 못하지만
같이 참여한 것이다.
물론 실수는 종종 한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부장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인가.
거짓말.
왠지 억울했다.
나와 신입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책임은 최종 집행자의 몫이 아닌가?
그게 리더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했는데
말단사원으로 누명을 쓰게 된 난 억울하고 억울했다.
소위 꼬리 자르기라는 것인가.
ㅡ말로만 들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세상은 참 내 맘 같지 않구나.
신입과 나는 술 약속을 하고 막 퇴근을 하려는 찰나
차장이 다가와서 술을 사겠다고 하고 우리를 자기 단골 선술집으로 데려갔다.
우리가 가려던 일본식 이자카야는 가지 못하고 오래된 골목 구석 가게로 끌려갔다.
오래된 가게라 주인장도 십수 년 음식점 경력의 여느 또래 어머니 같은 분이 푸근하게
반긴다. 맛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심심한 맛 정도의 질리지 않는 집밥과 술장사를
같이 하는 가게다.
역시 소주를 몇 병 기울이며 다시 차장이 변론을 하기 시작했다.
신입과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차장은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우면 잘리는 대상은
바로 윗선인 부장부터라고 했다.
그래서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신입들에게 책임지라고 한 것이라 했다.
신입에게는 실수도 이해해주는 부분이 있으니까.
인사로 퇴직 기한을 조금은 더 늘려 보려는 부장에 대한 차장의 배려였다.
‘맙소사! 그렇구나.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는 거다.’
나는 그렇게 이용당했다. 쓸모가 몹쓸 쓸모로. 그리고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억울과 울분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