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sser panda
Jun 04. 2021
대표와 이사 앞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납득할 만 명분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신입들인 우리는 의자놀이 명분 앞에서 희생양 같지만 총알받이를 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인사고과에 플러스 마이너스는 교차 대리된다.
신입 몇 달 간은 교육중인 시기이지만 우리가 쓸모가 있다면 이해해줄 만도 했다.
다행인 건 나 혼자가 아니라 신입과 같이라는 것.
나와 같은 감정과 상황에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마음속 한 귀퉁이엔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나 이상향 같은 것을 그려보았다. 나라면 차장과 부장의 입장과 상황일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부장은 제법 집은 산다고 들었는데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장이다. 차장도 마찬가지고.
부양가족이 없고 아직 혼자인 나와 신입의 밥줄은 한 명의 몫이니까 이해해야 하는 거라고
다같이 압박한 거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차장의 미래는 부장의 미래와도 멀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 40대 초중반인 그들의 세대는 원하는 기업에서 인재를 모시러 오던 시절이었다.
대학은 종종 미달이 생겨 운 좋게 들어간 사람도 많았던 지금과는 다른 시절.
중소기업단지들이 모여 있는 제법 신축 건물인 산업단지 빌딩은 비데도 있고
휴게실도 있고 지하에 구내식당도 있고 깔끔하다.
클래식이 나오는 우리 화장실로 가서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거울을 보았다.
숱 많고 까맣던 머릿속에 삐죽 흰머리 하나가 보였다.
스트레스성인가 노화인가.
이번 사건도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렇게 하나 둘 흰머리가 늘어나는가 보다.
사수의 퇴사는 집에 얘기할 수 있었지만 이번 건은 집에다가는 얘기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하소연만 하고 말았다.
나랑 비슷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도
뭐 그런 경우가 다 있냐고 하다가도 자기도 그 상황이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워크숍 때 이천 도자기센터에서 만든 호리호리한 주병을 깨버렸다.
과장은 무슨 그릇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내가 주병을 고르니 따라 만들었던 그 호리 주병.
그땐 워크숍에서 술파티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예쁜 주병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큰 그릇을 만들기에 첫 실력은 부족하기도 하고 만들어도 쓰임새보다는
관상용으로 둘 것이 뻔해서였다.
처음 모양을 만들 때는 수업을 개설한 도자기 지도자가 틀을 만들어주고 몇 바퀴를 다듬고
꽃 그림을 그려 넣고 만들었다.
유치원 시절 다각형 연필꽂이에 여러 말을 쓰며 기록한 이후로 첫 그릇 만들기였는데
그것과 같이 기념으로 TV 옆에 은은한 옥색 주병을 놓아두고 감상했었다.
이제 감상은커녕 보기도 싫어진 그릇, 와장창 부서진 주병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친구의 말에 위안 삼아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무력하게도 억울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억울로 개명해야 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