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밥솥
휴일이면 전기밥솥이 김을 뿜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는 것이 좋을 때가 있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여유롭다는 생각, 혹시 좋은 일이 오늘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고는 했다. 언젠가부터 밥솥은 부산한 소리를 뿜어내지 않았다. 밥이 끓는 순간부터 수증기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틈으로 빠져나가 내보낼 증기가 없었던 것이다.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 모이고, 높은 온도에서 밥을 끓게 만들어야 찰진 밥이 만들어진다. 물의 끓는점이 일반적인 대기압에서는 100℃지만 산처럼 높은 곳에서는 기압이 내려가 100℃가 되지 않아도 끓게 된다. 밥이 설익게 되는 이유다. 이 원리를 적용해 전기밥솥은 대기압이 높아지도록 고안되어 100℃보다 높은 온도가 되어야 끓도록 설정되어 있다. 뜨거운 증기는 갇혀 있으며 찰진 밥을 만들고 한순간에 빠져나가야 한다. 문제는 느슨해진 고무패킹. 어디선가 틈이 벌어져 제게 부여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좁은 통 속에서 뜨거운 열기를 견디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은 전기밥솥의 세계나 사람의 세계나 마찬가지다. 낡고 헤져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기술은 날마다 발달해 100℃가 훌쩍 없는 순간을 끝까지 견뎌야 하는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늘 같은 일상이라 예감하지 못했지만, 어느 때인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조금씩 바람 빠지듯 내보내지 않으면 숨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저마다 알고 있다. 뜨거우면 뜨겁다 소리치고 도망가기도 해야 하지만 꼼짝없이 붙들려 끝없이 무한궤도를 반복하는 삶이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다. 전기밥솥 그런 몸부림을 친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가 고무패킹을 갈아 끼우고 밥솥은 목소리를 되찾았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밥을 푸고 식사를 이어간다. 가끔 연탄불에 양은 냄비로 밥을 짓던 시절의 밥맛이 그립다. 살짝 설익은 부분과 고슬고슬한 부분, 누렇게 눌어붙은 부분을 함께 나눠먹던 기억을, 그러나 잃어버렸다. 가벼운 냄비 뚜껑 사이로 도망치던 수증기와 넘치던 밥물은 추억의 필름이 되었다. 똑같은 밥맛에 만족하며 더 찰진 밥에 열광하는 삶은 그 삶대로, 밥물이 넘쳐 고르지 않아도 누룽지 긁어먹어 가며 한 번씩 웃는 삶은 또 그 삶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이 자랑이었던 시절은 가고, 같아야 폼 나는 계절이 되었다.
내일 아침에도 밥을 짓기 시작할 전기밥솥은 오늘 밤 어떤 꿈을 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