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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Aug 02. 2020

추가 비용 30센트

8월이면 한국은 한참 더울 때이지만 독일은 여름의 끝무렵이에요. 그런 날씨 좋은 8월의 첫째 날, 저는 드럭스토어에 세제와 휴지를 사러 갔다가 그 옆에 있는 빵집에 들렀어요. 평소 자주 가지는 않지만 드럭스토어에 갈 때면 종종 가는 곳이죠. 이곳은 독일인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파는 곳이기도 해요. 저번에 할머니와 같이 왔다가 할아버지의 최애 케이크가 이 집 꺼라면서 이것저것 수북이 사가는 걸 보고 나도 기회 되면 들르는 곳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쪽에 올 때면 케이크를 한 조각씩 사다가 먹었죠. 물론 케이크는 독일스럽게도 멋스럽지도 않고, 그래서 가끔 실망하기도 해요. 독일은 베이킹으로 따지자면 복잡한 건 모르고 기초에 충실히 만드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독일에선 주식으로 먹는 단순한 빵들이 맛있습니다. 그리고 디저트용 케이크는 이웃나라 프랑스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못생기고 단순해 보여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독일 케이크는 소보로가 올라간 케이크입니다. 독일에서는 이런 종류의 케이크를 쿠헨(Kuchen)이라고 해요. 우리가 익숙한 크림이 올라간 케이크는 독일어로 토르테(Torte)라고 하는데 독일에선 비교적 드물게 먹어요. 


오늘은 사과와 소보로가 올라간 압펠 슈트로이젤 쿠헨을 한 조각 주문하고 (Apfelstreuselkuchen 1.80 유로) 계산을 하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이 더 비쌌어요. 딱 30센트, 한국 돈으로 400원 정도였죠. 의아해서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제가 산 케이크가 아닌 다른 종류의 케이크로 찍혀있고 가격은 2.10유로로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나는 왜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종업원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30센트를 얕잡아 본 걸까요. 2.10유로를 내고 받은 계산서를 주머니에 넣고 빵집에서 나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만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돌아가서 말해? 30센트 달라고?' 나는 되돌아가지 않고 묵묵히 집을 향해 걸었지만 후회가 되기 시작했어요. 내가 외국인이라 일부러 높게 받은 건가, 아니면 계산을 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실수한 건가, 왜 나는 그걸 알면서도 당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집에 와서 커피를 내려 쿠헨을 먹으려 포장지를 열기 전, 영수증을 다시 보고 이 안에 들어있는 쿠헨이 영수증에 찍혀있는 거면, 그래서 내가 30센트를 더 지불한 거면 억울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조심히 열어본 포장지 안에는... 역시 제가 주문한 사과 소보로 케이크가 들어 있더군요.. 쓰읍… 마음이 좀 쓰려왔습니다. 그런데 케이크가 맛있었어요. 그래서 조용히 처묵처묵 했습니다. 그리고 30센트의 분노와 억울함은 그냥 이 글에 담아 날려 보내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에 정신에 팔려 문제의 케이크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했어요. 다음부턴 사진 찍기를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모두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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