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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Sep 27. 2020

꿀벌들의 집안 나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려 창문을 열어놓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주말이었고 나는 한가로운 오전 시간을 커피 한잔과 직접 구운 케이크 한 조각으로 즐기려던 참이었다. 케이크를 먼저 접시에 담아 창문 옆 책상에 올려놓았고 곧 커피를 내려서 가져오려던 찰나였다. 그 사이, 바람을 타고 흘러나간 케이크의 냄새에 이끌려 꿀벌 한 마리가 창문으로 들어왔다. 케이크에 설탕 대신 꿀을 좀 넣은 게 문제였던 걸까, 벌은 내 케이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벌을 잘 따돌려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급히 구했다. 그리고 방안의 다른 구석에 가 커피와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은 케이크가 있던 창문 옆 책상을 떠날 줄을 몰랐다. 오히려 '여기 분명 뭔가 있었는데?' 하는 것같이 책상 위의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탐색하고 있었다. 벌은 내가 케이크를 다 먹어치운 후에도 윙윙 거리며 책상을 떠날 줄 몰랐고 나는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벌을 죽이면 벌금을 문다. 벌이 생태계에 주는 이점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벌들의 개체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어 환경보호 차원에서 생긴 법이다. 주에 따라 다르지만 벌을 잡거나 상해하거나 죽이면 5000유로에서 65000유로까지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이 법은 벌을 보호하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벌을 함부로 해하지 말라는 경각심을 심어준다. 그래서 난 어떻게든 방안에 들어온 벌을 살려서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또 벌은 공격 하면 위험하기도 해서 나는 벌이 자연스레 창문을 통해 다시 나가도록 유도했다. 사실 무작정 기다린다는 말이 더 맞겠다. 하지만 한번 꿀의 냄새를 맡은 벌은 케이크가 있었던 공간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이놈, 끈질기다.


이렇게 된 이상 벌과 동거가 시작된 건가. 책상 근처에 머물던 벌은 활동 반경을 넓혀 방안의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벌을 피해 방 안에서 요리조리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벌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나는 더 두려워했다. 분명 저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그러다 갑자기 머리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 안을 한참 돌아다니던 벌은 열려있던 창문의 반대쪽 창문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오후라 이 창문에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벌들은 태양을 기준으로 위치를 찾는다고 한다. 그 창문을 통해 방향을 잡고 내 방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창문을 닫혀 있었고 나는 조심히 창문을 열어 벌이 나가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벌과 케이크를 두고 힘든 싸움을 한 게 7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 번의 에피소드로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이날의 사건은 두고두고 다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날 이후로 벌들은 매일 비슷한 오전 시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와 책상 쪽을 돌다 반대쪽 창문으로 나가기를 반복했다. 반대쪽 창문이 닫혀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손수 벌들에게 길을 터주려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내 방을 찾아오는 벌들이 같은 벌 인지 다른 벌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들에게 '케이크=음식'이 있던 위치가 기억된 게 분명했다.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쯤 저기 저쪽에서 한 바퀴 돌고 코너 돌고 왼쪽으로 쭉 올라가 봐, 내가 분명히 거기서 음식을 발견했었어. 이제부터 매일 거기로 가서 음식이 있는지 확인하자.” 이런 식으로 다른 벌들에게 내 책상에 대한 이야기가 전달된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오는 벌들을 보면 비단 한 마리 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 한 달이 넘도록 더운 날씨에 열어둔 창문으로 벌들은 오전 중에 방으로 들어왔고 같은 경로를 통해 다른 창문으로 나가기를 반복했다. 때마침 자택 근무였던 나는 매일 오전을 방 안에서 보내며 벌들을 맞이하고 창문을 열어 배웅했다. 가을이 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9월이 되어 아침에 창문을 열어놓는 날이 줄었다. 그러면 방 안으로 들어오려다 창문에 부딪치는 벌들의 소리를 듣곤 한다. 이제 벌들이 매일 아침 방안에 들어와 길을 터주는 일은 덜 발생하겠지. 벌들이 어떻게 장소를 기억하고 의사소통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일상생활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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