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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Jan 23. 2021

천 커피 필터 후기

종이냐 천이냐, 커피 필터 비교

하루에 최소 한잔 

나는 매일 아침을 커피 한잔으로 시작한다. 핸드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세라믹 커피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접어 넣어 대부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준비한다. 원두는 가능하면 커피전문점에서 직접 로스팅한 제품을 산다. 아침마다 원두를 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인 셈이다. 갈린 원두를 넣기 전 종이필터를 뜨거운 물로 한번 적셔 필터의 종이 맛을 없애는 동시에 컵도 따뜻하게 만든다. 컵에 여과된 물을 버리고 난 뒤 필터에 갈린 원두를 넣는다. 그다음 갈린 원두가 충분히 적실 만큼만의 물을 넣고 30초 정도 기다린다. 이때 원두가 물에서 팽창하며 풍미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라고 한다. 그 후 천천히 원을 그려가며 물을 부어 커피가 컵에 가득 찰 때까지 내린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뭔가 전문가 같이 말하는 것 같으나 흉내나 낼뿐, 물 온도, 커피의 그램 수 등은 신경 쓰지 않고 평소에 해오던 감에 의지한다. (내 친구 중에 하나는 커피를 마실 때 매일 정제수를 사용하고 그램 수와 온도, 내리는 시간까지 지켜서 내려 마신다.)


매일 마시니 매일 커피 쓰레기 

매일 적어도 한잔이니 매일 적어도 한 번의 사용한 커피 필터와 그 속에 여과된 원두, 즉 커피 쓰레기가 나온다. 얼마 전 유기농 슈퍼에 갔더니 천으로 된 커피 필터가 있었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일회용품 줄이기 움직임이 커피 문화에도 깊숙이 퍼지고 있는 걸까? 실제로 시장에 나온 천 커피 필터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천으로 커피를 걸러 마시면 매일 생산하는 커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걸까? 나는 상품을 보자마자 반가웠고, 또 고민했다. 인도산 목화 천으로 만들어진 커피 필터는 두 개에 3~4유로 했다. 크기와 색은 일반 종이필터와 다를 바 없었다. 한약을 다릴 때도 천으로 약을 거르고 짜내지, 커피라고 왜 천으로 걸러내지 않을 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천 커피 필터를 사기까지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집에서 조금 생각해본 뒤 다음번 슈퍼에 갔을 때 그 상품을 집어 들었다.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한 거다. 


작가가 사용 중인 천 커피 필터


천 커피 필터

집에 와서 제품을 개봉하고 길지 않은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봤다. 천 필터는 종이보다 더 두꺼웠고 더 묵직했다. 이걸로 커피가 걸러질까? 설명서에는 처음 사용 전에 물에 한번 펄펄 끓이라고 되어 있었다. 또 매번 쓰고 세척해야 하며 어느 정도 쓰고 난 뒤에는 또 물에 끓여 잔여물을 제거하라고 쓰여있었다. 고민하지 않고 산 건 아니지만 세척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한번 써보자. 물에 한 번 끓인 천 필터를 말리고 그다음 날 처음으로 천 필터로 커피 내리기를 시도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평소에 커피를 내릴 때 먼저 종이필터를 따뜻한 물로 한번 적셨다. 그래서 습관처럼 천 필터도 커피를 내리기 전 한번 물에 적셨다. 그런데 천이 흡수하는 물의 양이 종이보다 더 많아서 물 조절에 몇 번이나 실패했다. 굳이 천 필터도 처음에 물로 적셔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여과된 커피는 종이필터보다 좀 더 깔끔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히 미묘한 차이를 느낄 만큼 내가 커피 전문가는 아니다. 사실 커피 맛본다는 후 세척과 관리의 어려움이 더 확연히 느껴졌다.  


세탁과 관리 

커피를 내린 후 천에 남아있는 커피 찌꺼기를 따로 버리고 천을 빨았다. 종이필터 같은 경우에는 필터만 쏙 집어서 버리면 되었는데 천 필터를 쓰면서 일거리가 늘어났다. 무엇보다도 천 필터에 베인 커피는 빨아도 빨아도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 세제를 쓰면 커피에 세제 맛이 우러나올 것 같아서 물로만 세척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세척에 한계가 있었다. 몇 번 사용 후 필터를 끓여서 세척했는데 그때마다 물이 커피색이 되는 걸 보았다. 그러면 나는 덜 세척된 천 필터에 매일 조금씩 축적된 커피를 다시 내려 마시는 건가 싶었다. 뜨거운 물로 끓여서 세척을 해도 완전히 깨끗해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 잔여물이 다음 커피를 내릴 때도 남아서 또 우러나온다는 게 나의 우려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옷에 묻은 커피를 지울 때 베이킹소다를 넣고 세탁한다고 한다. 그래서 필터를 끓일 때 베이킹소다를 넣고 빨아보기도 했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천 필터도 소모품인 만큼 점점 색이 바래고 잔여물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세척에 물을 더 많이 쓰다 보니 이게 과연 환경보호를 하는 방법일까 싶었다. 여느 물건처럼 천 커피 필터 또한 영구적인 상품이 아니다. 천 필터도 몇 개월에 한 번씩 바꿔줘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종이필터를 생산하는데 나무가 사용되기 때문에 쓰레기는 자연 분해되지만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 그래서 요즘은 종이필터와 천 필터를 번갈아 가며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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