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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Mar 01. 2019

상트페테르부르크 리포트 4

러시아의 사람들과 인종차별 그리고 치안

러시아에 도착하기 전 집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나는 잔뜩 겁을 먹었었다 (3편 머무는 곳 참조). 러시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라고 도착하기도 전부터 사기의 대상이 되었는데 막상 그곳에 가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의 러시아 친구도 그런 나의 상황이 걱정되었는지 가능하면 역 근처는 가지 말고 관광지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여러 번 일러줬다. 친구는 노파심에 그런 말을 한걸 지도 모르지만 나는 러시아 사람까지 나한테 이렇게 말할 정도면 치안이 얼마나 안 좋은 건지 출국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에 퍼져있는 러시아 치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한몫했다. 한국 친구들도 내가 러시아에 간다고 말하면 몸조심 하라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란 도시는 나의 모든 걱정이 무색하게 훨씬 안전했다. 나 또한 내 소지품에 주의를 많이 가하는 편이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는 등 굳이 위험한 일을 사서 하지 않았기에 별일 없이 한 달을 보냈다. 러시아도 사람 사는 곳인데 내가 너무 걱정을 했나 보다 했다. 


사실 우리가 러시아 방문에 걱정하는 건 일반적인 치안보다는 아시아인에게 유독 심한 인종차별과 관련된 범죄인 것 같다. 2006년 Amnesty International이 러시아의 인종차별은 통제 불가능하다고 선언할 정도로 러시아는 유색인종에게 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2008년 이후로 인종차별적인 폭력의 수가 많이 줄어든 만큼 (2008년 기준 인종차별에서 기인한 폭력 사고로 사망 109건, 부상 486건, 2015년 기준 사망 9건, 부상 68건, 출처: SOVA Center) 지난 10년간 그 양상이 많이 완화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폭력적이진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만났다. 예를 들어 매표소에서 나에게 러시아어로만 말하고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다른 서양인들한테는 친절한데 유독 나한테만 불친절한 매표원들을 종종 마주쳤다. 러시아 사람들이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유독 불친절한 이유는 중앙아시아에서 오는 이민자들과도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러시아에는 키르기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이민자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잘하지 않고 그들끼리 하위문화를 만들어 지낸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미 뉴스로 많이 접했다. 그런 배경에서 아시아적인 생김새가 부정적인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러시아의 이민자 문제를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동양인을 차별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겉모습에 의지해 판단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건 옳지 않다. 아무리 그 누군가가 중앙아시아에서 왔고 러시아어를 잘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몇 건의 기분 나쁜 상황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거나, 사실 대부분 무관심한 편이었다. 


내 러시아 친구는 러시아가 2018년 여름에 월드컵을 치른 후라 일반적으로 외국인에 친절할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에게 모르는 사람이 웃으면서 다가오면 무조건 조심하라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타인에게 잘 웃지 않는데 웃으면서 다가오는 건 사기든 소매치기든 나에게서 뭔가를 원하기 때문이란다. 사실 베를린에서 하듯이 잘 모르는 옆집 사람과 마주쳤을 때 눈으로 웃었는데 나에게 돌아온 건 싸늘한 눈빛뿐이었다. 베를린에서는 그러면 다시 웃음으로 대답해 주거나 안녕하며 인사를 걸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렇다, 러시아 사람들은 잘 모르는 타인에게 차갑다. 


러시아 사람들은 일단 처음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되면 독일 사람들보다 친해지기는 쉬운 것 같다. 시크한 면이 있어서 불평하는 듯하면서도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자 했다. 하지만 타인의 일에 무관심해 길거리에서 누군가 불행한 일을 겪어도 쉽게 무시당하기 일수였다. 한 번은 비가 내리던 날 내가 빗물에 발이 꼬여 신호등 건널목에서 크게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호등이 바뀌면 차가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꼴을 보고 (소리 내서) 웃기만 하고 무시하고 지나갔다. 나는 빗물을 맞으며 안간힘을 써 거의 기어서 건널목을 빠져나왔다. 더 험한 일을 당해도 나는 도움도 받지 못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사건이었다. 이건 내가 외국인이라서 라기보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보면 왜 러시아인은 다른 러시아인을 피할까, 왜 러시아인은 아픈 사람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데 무시하고 지나갈까 하는 비디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왜 이럴까에 대해서 러시아 친구와 이야기도 나눠보고 다양한 해석을 하는 글도 읽어 봤지만 특별한 대답 없이 그것이 러시아의 문화라는 결론으로 끝나기 일수다. 문화는 문화겠지만, 그게 어떤 다른 요소들과 연관되어 있는지는 설명하기 복잡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러시아 사람들이 차갑게 느껴지는 건 과장되거나 거짓이 없는 진실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은 과거 소련 시절 때부터 사회경제적인 배경에서 굳어진 문화라고도 한다. 무엇이 옮은 설명인지 나는 알 수 없어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또 내가 경험한 곳은 대도시의 관광지 중심이었고 나는 한 명의 방문객으로서 제한된 공간과 사회분야를 관찰했음을 염두해야 한다. 내가 만약 러시아 사회에서 일을 하게 되는 등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게 되면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의 가을 모습과 어디서 환전하는 게 좋은지 유용한 팁을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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