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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Jan 30. 2023

갈매기가 무서워

시드니 광매기에게 점심 강탈 당한 썰



나는 갈매기를 무서워한다. 예전에는 딱히 갈매기를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유람선을 타거나 바닷가에 가면 새우깡을 주고 싶어서 갈매기를 향해 팔을 뻗는 용감한 사람이었는데, 어떤 사건 때문에 갈매기의 무서움을 잔뜩 실감하고는 그 후로는 갈매기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족하고 있다.


사건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이라서 갈매기의 “갈”자만 나와도 자동 재생되는 스토리. 호주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였던 시드니, 그중에서도 첫 번째 일정으로 고른 것이 바로 시드니 피쉬마켓이었다! 어떤 도시에서 생생한 생동감과 사람들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시장이기에,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피쉬마켓은 딱 마음에 드는 목적지이기도 했다. 역시 사람 구경, 생선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이곳저곳 바쁘게 구경하면서 뭘 먹을까 갈등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선정한 이 날의 점심 메뉴! 귀여운 스시도넛과 신선한 연어회, 가리비 치즈구이와 관자꼬치까지! 하나하나 소중히 골라서, 안쪽에는 마땅히 먹을 자리가 없길래 바깥쪽 자리로 나와서 자리를 물색했다.

야외 자리에서도 많은 분들이 평화롭게 식사를 하고 계시길래 우리도 큰 경계(?) 없이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메뉴 선택에 만족하며 인증샷까지 찍었다. 옆에서 서너 마리의 갈매기들이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져서 약간 불안했지만, 다른 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셔서 여행객의 과한 걱정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식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슬금슬금 걸어서 다가오던 갈매기들이 순식간에 날아오르더니 우리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분명 서너 마리인 줄 알았는데, 족히 10마리는 되어 보였던 빨간 눈의 광매기들!

그 푸드덕거림과 공격적인 모습에 놀라서 비명!
내 생에 그렇게 크게 어딘가에서 소리를 지른 건 놀이공원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 계시던 경비원 분이 기다란 빗자루로 갈매기를 쫓아주셨고,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테이블 위의 음식들, 그 테이블을 다 채우고 남을 만큼의 쪽팔림과 함께 남았다. 친구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서로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남은 음식들을 치우고 다시 안전한 실내로 피신했다.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던 분들은 잠깐의 갈매기쇼가 끝나자 다시 평화롭게 식사를 하셨다. 우리가 처음일까? 종종 이런 일이 있는 걸까? 갈매기가 우리를 우습게 안 걸까? 갈매기한테도 그런 게 티 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놀란 가슴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소란을 겪었으니 입맛이 사라질 만도 했지만, 여전히 배는 고팠다. 그렇지만 연어회에 공격적으로 달려들던 갈매기들의 입이 자꾸 생각나서 다시 회를 먹고 싶은 기분은 뚝 떨어지고 말았다.


피쉬마켓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과일과 스콘을 발견하고, 의도치 않게 브런치스러운 메뉴를 즐길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시드니 갈매기들의 포악함에 대해서 혀를 내두르며 계속 곱씹었다.


그리고, 시드니 여행 내내 계속계속 기-승-전-갈매기의 상황을 겪었다.


ㅡ와, 여기 진짜 멋져!

ㅡ근데 갈매기 진짜 무서웠지?

ㅡ오, 이거 맛있다!

ㅡ갈매기들 밥 먹을 때 진짜 무섭더라….


연어회, 스시도넛, 관자꼬치, 가리비 구이. 거의 2-3만 원에 달하는 음식들을 갈매기밥으로 주게 되다니. 여행의 시작이 꽤나 너그러웠다.


나도 먹고 싶었는데, 나쁜 갈매기들! 다음번에 또 시드니 피쉬마켓에 가게 된다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나의 점심을 내어주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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