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수도 없고, 화해할 수도 없는 그런 사이
그럼에도 나는 너의 무탈을 빈다
삼총사처럼 늘 붙어 다니던 친구 둘이 있었다. 여기에서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중 한 명은 여전히 10년을 넘게 함께하고 있지만, 다른 한 명은 소식도 모르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이유들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만큼 또 많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싸울 수도 없고, 화해할 수도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된 이유는 딱히 없다. 나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어쩌면 그 친구가 어떤 이유로 서서히 멀어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 나 역시 그렇게 멀어지는 과정 속에서 서운함이나 미운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모든 게 괜찮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감정이나 사건들도 그 색과 온도를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간은 모든 걸 그렇게 괜찮아지게 만들곤 한다.
ㅡ
큰 용기를 내어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용기는 아니었고, 다른 친구 하나가 술기운으로 만들어 낸 재회였다. 나보다 확실한 걸 좋아했던 다른 친구는 어찌 보면 애매해진 관계를 확실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만남을 계기로 다시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우리에게서 밀물처럼 빠져버린 그 친구의 빈자리를 나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평소 성격을 미루어보면 내가 좀 더 예민한 편이고, 친구는 털털하고 둔감한 편이었는데, 관계에 있어서는 약간은 그 반대에 가까웠다.
몇 년 만에 만난 삼총사는 어색했다.
원래 같았으면 뻔히 알고도 남았을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남은 계절은 뭘 하고 보낼 건지 가지고 있는 소소한 계획들도 말했다. 중간중간 웃었고, 조금은 투닥이기도 했고, 어색하긴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우리가 멀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는 짧은 사과만 서로 건넸다.
나는 조금 속상했다. 오히려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시간보다 더, 짧은 순간에 많은 감정이 밀려왔다. 단짝친구로 지낸 시간이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시간의 2배가 넘었지만, 그 시간은 온 데 간 데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덤덤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어렸지만, 그래도 만남과 헤어짐에는 이전보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만남은 길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빈 말처럼 “연락할게”라거나, “또 보자”라는 말을 건네지 않아서 이후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우연이 아닌 이상, 이 친구와는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란 걸 느꼈던 것 같다.
ㅡ 반가웠어. 잘 지내!
자연스럽게 헤어지면서 건넸던 인사. 누구도 뒤를 힐끔거리거나, 가다가 잠시 발을 멈추는 헤어짐이 아니었다. 용기 내어 만남을 주선한 다른 친구는 그래도 만나길 잘했다며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었다. 나도 잠시동안 느껴졌던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고 바쁘게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그보다도 시간이 훨씬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다른 친구를 만나면 종종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 이야기는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재밌었거나, 웃겼던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기억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끔씩 그 친구가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도 되지만, 일부러 찾아서 연락하지 않는 것은 몇 년 전에 했던 그 덤덤한 작별 때문인 것 같다.
ㅡ 잘 지내겠지?
ㅡ 그럼, 잘 지내고도 남지
우리는 소원해졌고, 궁금해도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의 무탈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