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의 종착지는 결국...
몇 년 전 취업시장에 머리채 잡혀 끌려온 문과생 컨셉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땐 내 인생 두 번째 바닥을 찍고 있던 시기라(인생에 바닥이 끝이 없다)
글을 몇 개 올리다 말았다.
다시 돌아온 취업시장에 끌려온 문과생 이야기.
결국 문과생의 종착지인 공무원이 됐다.
어렸을 적 공무원은 죽어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게 무색하게도
결국은 공무원이 되고 말았다.
나는 문사철 중 한 과를 나왔고
학생운동이 망하기 직전, 끝물이 다 돼서 학생운동에 발을 잠깐 담갔다.
진로 선택을 할 때 활동가로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기자를 준비해볼까 고민을 했지만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극심한 무기력을 느낀 끝에
집에 가면 더 이상 일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사무직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문재인 정권에 공기업 채용이 대거 늘면서 처음엔 공기업을 준비했다.
인턴도 하고, 각종 자격증에 어학점수를 만들고 ncs공부를 했다.
하지만 매번 필기시험을 보러 갈 때면 100:1이 넘는 경쟁률에 자신감이 없어졌고
겨우 서류전형을 뚫으면 한 문제 차이로 필기에서 떨어지면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취준 기간을 오래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취준 1년 만에 사기업에 취업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기뻤고,
한 달 치 월급이 나오는 게 기뻤다.
하지만 업무량은 늘어만 갔고 신입인 나는 어리버리했고,
계획을 세워 처리하지 않고 매일 급하게 업무 처리하는 상사의 스타일이 나랑 맞지 않아 힘들었다.
입사동기에게 정규직 전환을 내세워 갑질을 하는 대표의 행태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정규직 전환 면접을 볼 때 야근 시간을 뽑아서 한 달에 몇 시간 야근했는지 확인하는 기업의 문화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정규직 전환 통보를 받고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서는 워라밸과 자유로운 조직문화가 보장된다는 공무원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와서 보니 순전히 뻥이었지만.)
공시생일 때 전회사의 외주업체 대표님이 내 퇴사 소식을 듣고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줬지만, 난 왠지 다시 들어가도 비슷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무원 준비 나중에 해도 그만인데 들어가볼걸 싶어서 조금 후회가 된다.
운이 좋게도 1년이 조금 안 되어 합격을 했고
지금까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글로 적어놓으니 단기간에 일어난 일인 것 같지만 이 방황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굉장히 길었다.
그리고 공무원으로 일하는 지금, 일에 대한 재미나 의미를 전혀 찾지 못한 채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먹듯이 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괴롭다.
끊임없이 돈을 벌어 내 생활을 유지해야하니 쉽게 그만두기도 어렵고
나이도 앞자리가 3으로 변해 어디 재취업을 하기가 힘들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를 생각하다가
무언가 선택할 때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는 내 방식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글 쓰고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인데, 어느부턴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보이고 내 작품은 너무 초라해보였다.
이 세상은 재능을 가진 선택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같은 사람은 실패할거라고 생각했다.
글 쓰면서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여기에만 매달리다가 취업도 못하고 거지가 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하지말고 일단 해보고 그 때 생각해도 늦지 않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제일 안전한 것만 생각하다가 결국 공무원이 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하고, 글을 쓸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돈도 명예도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정말 내가 마음 깊이 원하는 것은 뭔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면직을 하고 알바인생으로 산다고 해도,
진정으로 하고픈 것을 발견하고 그 꿈을 위해 산다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짬이 나는데로,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찬찬히 찾고
실행해 보려고 한다.
할 수 있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