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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네모펀치 Oct 19. 2020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걱정

20대 사회초년생이 보는 집값

하루종일 일을 해서  1g조차 캐지 못했다

금을 캐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 돈을 내야했고, 수레도 대여해야 했다. 그 비용을 다 제외하면 운이 좋아야 하루에 1만원 남짓되는 돈을 벌었다.

그 아이는 겨우 새 책가방과 스케치북을 선물로 받고 지금까지 본적없던 얼굴로 활짝 웃었다.

지금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 당장 오늘에 대한 걱정 사이에 짧게 보이는 웃음이었다.


아프리카에 산다는 그 아이에 비하면 내 모든 걱정은 너무나도 사치스럽다. 나는 당장 굶을 걱정은 안해도 되고,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당장 막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의 고민에 너무도 공감이 된다는 게 우습기도 하다.


서울에 꾸역꾸역 눌러산지 10

서울 살 깜냥이 안되는데, 그래도 적당히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10년을 채웠다. 전까지는 서울에 있어야한다는 명분이 있었는데, 졸업해버리고 일도 그만두니 명분도 사라졌다. 그래도 버티면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지 싶었다. 다시 전세만기는 다가오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지금, 서울 부동산 가격을 보면 막막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올랐다. 마지막 전세 계약 시점보다 . 서울에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살았던 아파트는 빚을 조금 보태면 살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일정한 소득이 없었던 우리집 형편상 그러지는 못했다. 그 때 우리가 사지 못하고 전세로 들어갔던 집은 5년 뒤 3배까지 올랐다. 사람들이 말하더라. ‘그때 영끌해서 샀어야 했다!’ 고. 하지만 우리는 100번 돌아가도 100번 다 사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몰빵 넣어놓고 숨만 쉬며 살 수는 없을거니까. 그때 우리집 수입은 없었고, 나랑 동생은 중고딩이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한겨울에 온수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따뜻한 남쪽에서 올라와서 서울의 겨울이 이렇게 혹독한지도, 서울살이가 이렇게 힘든 건지도 몰랐다.


꾸역꾸역 서울에서 버틴 게 의미가 있었는지 나랑 동생은 서울에 대학을 무난하게 갔다. 그래서 대학기간 동안 나는 서울에 뿌리를 잘 내리고 살 줄 알았다.


푼돈 아껴쓴다고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닌 금액

직장을 그만둘 때도 모아놓은 돈이 있어서 마음 놓고 그만뒀는데. 문제는 집이었다.

아니 솔직하게, 지금까지 부모님이 모은 돈으로는 여전히 택도 없는 금액.

다른 가족들은 뭘해서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나, 부럽다, 나 때문에 엄마가 서울에 와서 집도 없이 고생을 하시는구나, 지방에 내려가면 충분히 좋은 집에 살 수 있으실텐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지친다. 지방에 내려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서울이 뭐라고 아득바득 붙어있어야 하나. 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올라온 서울인데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친구와 생활반경이 여기에 다 있는데 이걸 버리고 다시 무연고지로 간다니, 두렵다. 서울에서 하고 싶었던 일에 다가가고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성공을 이루고 싶다.


직장을 그만뒀을 때의 계획과 달리 최대한 빨리 다른 직장을 구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월세라도 내며 서울살이를 계속하려면.


안정과 평범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더라

서울에 올라온 그 순간부터 안정적이라고 느낀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자고나면 몇 천만원 씩 오르는 집값은 살인적이다. 전세는 내부가 다 쓰러져가는 곳도 많다. 화장실이나 싱크대는 고사하고 수지타산이 안맞다며 집주인은 도배 장판도 해주지 않는다. 40년 된 아파트 새시 수리조차 하지 않는다. 시장이 그러하고 집주인들도 사정이 있기에 뭐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맞다. 집주인들도 자선사업하는 거 아니고 계산기 두드려보고 하는 거다. 인정한다. 아쉬우면 집주인하라고 한다. 돈 많이 벌어서 집을 사든지 빚을 내든지 하라더라.


맞는 말인데, 가끔 너무 궁금하다. 겨울에 우풍 때문에 얼어죽겠는데 난방비가 너무 비싸 난방도 못하는 삶이 이렇게 흔한 걸까? 다른 이들도 이렇게 사는 거고 이게 평범한 건지 정말로 궁금하다. 지금까지 살았던 전세집 중 멀쩡한 집은 하나도 없었다. 아 여기가 우리집이었으면 딱 좋겠다! 하는 집은 없었다. 집주인들은 대부분 다주택보유자였다. 적개는 십여채, 많게는 수백채까지 가지고 있었다. 저 사람이 보유한 집에 사는 나같은 사람들은 다 나랑 똑같이 생각하겠지?


어떻게든 악착같이 여기를 버티면, 그래서 변두리에 작은  공간이라도 하나 만들면, 서울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아직 버리지 못하겠다. 지방에는 빈집이 널렸다는데, 인구가 줄어들면 지금보다는 나아질거라고 가끔 생각한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당장 지금의 위기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 부모가 어디 살지까지 걱정하는 것은 또래의 흔한 고민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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