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모네모펀치 Mar 03. 2020

이미지를 셀링하는 시대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시대, 사실 본질은 크게 상관없다.

IMAGE, 창조와 발생 사이

"내 첫인상 어땠어? 지금이랑 달라?"

친분이 좀 쌓이면 남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사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일텐데, 나는 나를 모른다. 나는 나의 너무 자세한 부분까지도 알고 있어서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내리기 너무 힘들다. 본인 이미지는 타인이 더 판단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어릴 때 만난 친구는 나를 다툼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난 후배들은 나를 때론 화도 내고,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인턴을 했던 직장에서는 눈치가 빠르고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으로, 우리 집에서는 눈치가 없고 행동이 굼뜬 사람으로 통한다.


난무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나에게 꼭 맞는 그림을 찾고 있다. 물론 목적은 취준용 자소서에 쓰기 위해서. 매력적인 컨셉을 잡고 확실히 밀어야 한다는데 도대체 나의 컨셉이 뭔지 모르겠다. '다양한 경험 보유자', '외국어를 필두로 한 글로벌 역량 소유자', '알바로 등록금을 낸 독립형 인간'... 그 중에 나에게 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진짜 이미지를 말하자면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안전지향인', '장기적 목표를 세우지 않은 무계획형 인간', '살아오면서 재미있었던 일이 떠오르지 않는 무기력 소유자' 정도일까?



내가 만들고 싶은 건..

힐러리 클린턴의 대학시절. 지금이랑 완전 다른 이미지다.

힐러리 클린턴은 머리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자리가 바뀔 때마다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다. 때론 우아한 영부인, 때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힐러리 클린턴의 행동과 이념에는 큰 변화가 없더라도 우리는 힐러리를 더 우아하게, 혹은 더 카리스마 넘치게 기억한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지가 대중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아니 정말, 사실! 본질은 큰게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어학연수 갔다 온 것, 해외 경험 몇 번 있는 것이 글로벌 역량을 증명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든 거다. 우리는 기껏해야 3000자의 자소서로 그 사람의 본질을 알 길이 없다. 그럴 듯한 이미지에 적절한 경험을 붙이면 그게 그 사람의 이미지다.


굉장히 간단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되고 싶은 이미지가 없다는 것. 만들고 싶은 이미지가 없다. 나도 꽤 잘하는 것도 있고 능력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미지 정도야 쉽게 만들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기억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에 대한 의지가 왜인지 심각하게 상실된 상황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꾸역꾸역 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열정 넘치는 소통왕', '철저한 분석가'와 같은 것들로...



그래서, 어쩔건데?


머리를 쥐어 짜내기 너무 힘들 때마다 생각한다. 이게 진짜 내 일이 맞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다. 네 일이 아니면, 이 길이 아니면 어쩔건데? 용기 있게 남들이 가지 않는 나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까? 그건 더 힘들거다. 가다가 힘들어서 못하겠다 싶으면 그 땐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지난 인생을 통해 잘 배웠다. 돌아올 결과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취준이다. 가고 싶지도 않은 기업에 자소서를 우겨 쓰고, 오르지도 않는 인적성 공부를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면접 준비를 한다. 계속 떨어지는 게 어쩌면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준비를 해서 취업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될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 억울하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삶을 열심히 살았다. 다만 그게 기업이 원하는 활동이 아닐 뿐이다. 사회가 원하는 활동이 아닐 뿐이다. 방향이 틀렸다고 해도 너무 가혹한 시대에 던져졌다. 한 번쯤 요행을 바라면 안되는 건가? 자꾸만 세상을, 혹은 내 삶을 비뚤게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곁눈질한 죽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