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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Jan 08. 2021

이가 빠진다는 것의 의미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 젖니가 나오고, 나이가 들면 영구치가 빠지고

몸에서 이가 빠진다는 것은 더 이상 내 육체가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이상 이가 지탱해주지 않는 얼굴은 움푹 파여있었고 두 눈은 점점 투명해져 갔다. 


'이가 빠진다는 것'

삶과 직결되는 먹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가 빠진다는 것은 일생에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 것인가!

심하게 다툰 어느 날 그가 외쳤었다. "나는 이제 이도 다 빠지고!!!............."

'그게 내 탓이야? 당신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몸 관리를 안 해서 그런 거잖아!' (내면의 소리가 외쳤다)

이가 빠지면->임플란트 or 틀니 간단하게 생각했던 내게 이 발언은 좀 충격적이었는데 이가 빠진다는 것의 의미를 '외적인 의미'가 아닌 '노화의 의미'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노화의 의미'에서 '죽음의 의미'로 더 심화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기가 이가 없는 채로 태어나 엄마 젖을 끊고 이유식을 시작할 때쯤 두 개의 이로 시작하는 젖니가 출현한다. 그러니 어른들의 이가 빠진다는 것은 삶이 시작보다는 끝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아빠도 현 남편도 그런 의미를 알았을까? 

"아빠 어디 아파요?" 물어보는 내게 "이가 아파" 하며 눈꼬리가 내려갔던 아빠의 얼굴과 "나는 이제 이도 빠지고!!"라고 내게 소리 지르던 그의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는 어쩌면 흔들리는 서로를 기대고 살았다. 흔들리는 채로 만나 사정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주길 원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었지만 그는 가정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고, 나도 그를 굳이 '나의 가정'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는 평범한 남편들이 누릴 수 없는 '자유'를 즐기는 듯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오히려 소속되지 못한 섭섭함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잔소리도 하고, 때로는 '당신이 없어 아빠가 없어 우리의 휴일은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를 꺼내 '문제'로 만들어 다투는 것을 극도로 피했던 나는 (오기로) 굳이 그의 생활에 대해 간섭하며 내 마음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 또한 묘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하며 10년이 흘렀다. 


어쨌든 난 빨간 날, 그가 쉬는 날이 최고로 싫었다. 나들이 가기 좋은 날은 낚시를 가고, 궂은날은 온종일 소파에 길게 누워 TV 채널을 이리저리 틀어대는 모습에 그가 어린이날뿐만이 아니라 휴일에 '아빠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돕거나, 투쟁하는 대신 입을 닫고 밖으로 나도는 것을 택했다. 


제주도는 그런 내게 에덴동산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우리가 찾는 자연은 그리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없는 곳이 많았는데, 이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었다. 도시에서처럼 휴일에 아빠가 아이들만 데리고 놀이터나 공원에 나오는 것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한쪽이 떨어져 나간 가정의 모습으로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었다. 누군가 아빠가 없는 우리 가족을 목격하게 되어도, 아빠 없이 여행을 온 멋있는 가정의 이미지로 비칠 것이라 안심했다. 


"계속 니 멋대로 한 번 살아봐라. 난 네가 없어도 전혀 외롭지 않고, 잘 살 수 있다." 보여주고 싶어 아이들과 억척스럽게 나갔고 처량하고 슬픈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셋이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점점 난 혼자 섰다. 

그 또한 그랬다.

돌아보니 우리의 결혼생활은 끈끈하게 하나가 되고, 흔들리는 서로에게 기대는 대신 각자 가정으로부터 독립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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