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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밤 Dec 11. 2020

죽음의 문턱 앞에서 '순국'을 떼어내다.

구름속 비행착각

 2019년 3월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났다. 눈물이 났다.

무엇보다 유도분만으로 36시간이라는 진통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내는 아내의 손을 잡는 것 외에 고통을 함께할 수 없음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20개월이 지난 지금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

20개월의 행복 속에서 잠시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이야기를 남기려고 한다.

(아내는 모르는 나만의 이야기다.)


 결혼한지 5년만에 삼신할매가 선사해주셨는지, 황새가 물어다 주었는지 이쁜아기를 가지된 

2019년은 항공기 정비사(엔지니어)로 근무한지 13년차가 되는 해였다.

2019년 4월 5일(금) 어김없이 밤새 쪽잠을 잤었지만, 여느때와 같이 행복한 피로를 느끼며 출근을 하였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의 생활을 보내고 집에서 맞닥뜨린 육아는 잠과의 전쟁이였다. ) 

 

 부족한 잠을 카페인으로 극복하기 위해 커피 한잔을 하며, 브리핑에 참석하였다.

오늘의 비행스케쥴은 9시~12시(3시간)이였고, 기상은 안개가 많이 낀 상태였다.

항공기 비행 전 점검을 수행하였고, 비행준비를 하였다. 

(헬리콥터를 운용하는 대부분의 관공서는 항공정비사가 탑승한다.)


 9시 정각 항공기는 이륙하였고, 여전히 기상은 나빴지만, 기상제한치 이상이였다.

항공기의 모든 시스템은 정상작동 중이였고, 중간 경유지로 가는길에 구름과 안개로 인해 시야확보가 안되는 구간도 있었다.

비행을 하다보면 안개, 구름, 비, 눈 등으로 인해 시야확보가 안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 

그런경우 VFR(시계비행)에서 IFR(계기비행)으로 전환하여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고, 판단은 정조종사(기장)이 결정한다.

 * VFR(Visual Flight Rules) : 눈으로 지형지물을 보며 비행

 * IFR(Instrument Flight Rules) : 관제 지시(항공기 방향, 고도 등)에 따라 항법장비로 여객기처럼 비행




 중간 경유지를 거쳐 다시 모기지(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여전히 기상은 좋아지지 않았고 일부 구간에서는 기상이 더욱 나빠진 상태였다.

OO산을 넘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산 중턱에 구름이 걸쳐있었고, 항공기는 구름위(On-Top)로 비행하기 위해 고도를 높혔다. 고도는 이미 5000ft를 넘어가고 있었고 구름 층 사이에 껴있는 상태였다.

그때 관제기구에서는 우리가 비행중인 공역 주위에 전투기들이 비행하는 중이라 위험하기 때문에 빨리 고도를 낮출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구름사진은 아니지만 우리 항공기 위 아래로 두터운 구름층이 있었고, 구름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구름을 뚫고 내려가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다행히 전방에 뚫린 구멍 이 있어서 그 사이로 고도를 낮춰 내려가기 시작했다.


VFR, IMC

5,000ft → ????ft

Pitch 35º, 0Knot, Left Roll over, Spin, Recovery 

아래 사진은 당시 GPS로 기록된 실제 경로다.

 지금부터는 정말 찰나의 순간이였다.

우측 사진에 화살표는 항공기 방향(heading)이다.고도는 5,000ft에서 속도 감속하며 하강중이였다.

나는 Cabin Window를 통해 바깥상황을 확인중이였고, 또다시 구름속으로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계기판을 확인하게 되었고,

속도는 0knot를 가리키고, 자세계는 눈알이 뒤집혀 있었다. 

(우측 사진 아래 헬리콥터와 같은 자세)

 이때 다시 구름에서 벗어났고, 항공기는 뒤로 가고 있었다. (정말 극악의 위험한 상황이다.)

 이게 바로 비행착각(SD)에 빠진 상태였던 것이다.

이어서 항공기는 좌측으로 뒤집어 지고 있었고, 나는 죽음의 문턱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대로 산에 처박는 것이였다. 나의 이름과 함께 '순국'이라는 단어가 붙기 직전이였다.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가 있는 이유는 시간의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였다.

(만약 그대로 추락했다면, 위의 사진처럼 끝나지 않고 잔해조차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니였나보다. 

죽음의 문턱에서 조종사는 항공기 자세를 회복할 수 있었고, 단 몇초사이에 발생한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아내와 아이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한순간에 모든것을 잃을뻔한 순간이였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몇 동료들의 '순국'을 지켜봐야만 했었고, 남아있는 동료들과 슬퍼하였다.

하지만 그게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20개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비행을 한다. 

'사고예방' 혹은 '비행안전'을 위해 다양하게 접근하여 여러가지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예로는 국내외 항공사고조사보고서(100page 이상)를 발췌 요약하여 부담없이 읽기 쉽게 1~2장 짜리 리포트로 만들어 정보공유를 하고 있고, 교육측면에서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가슴아프게도 위험을 알면서도 귀차니즘이라는 본능 앞에서 관심없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남길 순 없지만 나의 노력과 외침은 그들에게 침묵의 소리인가보다.




 아내와 가족들은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위로받고 싶었지만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속에 불필요한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다. 온전하게 우리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래놓고 가끔 사사로운 것으로 다툰다.)

 기억용량(기억력)이 1mb도 안될 것 같은 나의 두뇌속에서 지워지기 전에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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