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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밤 Nov 26. 2021

밝은 새 아침

환자가 아버지 친구였던 이야기

졸린 눈을 잠시 감으며 '섬마을 환자를 왜 우리가 구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짧은 결론을 내었다. 

나름 멋진 일을 한다고 혼자 으쓱댔던 기억이 난다.




  10년 전쯤의 일이다. 백령도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한 일이다.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었고 새벽 1시가 넘어 배로는 너무 느려 육지의 병원까지 이송할 수 없었다. 

비상대기 헬리콥터가 바로 백령도로 출동하였다. 지상근무였던 나는 헬리콥터가 백령도로 떠난 사이 대기실에 앉아 졸린 눈을 잠시 감으며 '섬마을 환자를 왜 우리가 구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헌법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배웠다. 섬마을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응급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섬마을에 살면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누가 섬마을에 살려고 할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우리가 존재한다는 짧은 결론을 내었다. 

나름 멋진 일을 한다고 혼자 으쓱댔던 기억이 난다.




  일출 시간이 되자 4시간의 여정을 다녀온 헬리콥터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했던 공간에 들리는 헬리콥터 특유의 소리는 해외에서 조난자에게 '죽는 줄 알았던 그 순간 기적처럼 들려오는 소리', '자유의 소리(Sound of Freedom)'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도로에 폭주족처럼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소음(Noise)으로 인식해서 민원에 시달린다. 

  누군가는 헬리콥터에 응급환자로 타고 있을 텐데 말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음 비행을 위해 연료를 보급하고 점검을 한다.





  며칠 뒤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나갔는데 친한 친구분께서 우리 헬리콥터를 타고 병원으로 가셨다고 했다. 당시 친구분은 급성 맹장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백령도에서는 수술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아버지 친구분은 내가 어릴 적 자주 보았던 소나타(자동차)에 선글라스를 끼고 속도를 즐기며 멋을 낼 줄 아셨던 '터보(Turbo)' 아저씨였다. 멋지게 운전하시던 모습에 내가 붙여드린 별명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헬리콥터를 타고 친구가 무사해서 좋아하셨고, 터보 아저씨에게 네가 탄 헬리콥터가 진짜 '터보(Turbo) 엔진'이라고 했다. 

응급수술을 마친 뒤 아저씨는 밝은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고 소매깃처럼 스치는 인연치고는 눈부신 인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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