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공군, 오래된 미래 - 다시 읽는 코메트
깊은 밤도 잠들었을 새벽 시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깨어날까 봐 까치발로 문을 열고 나가고, 혹시나 아빠가 일찍 올까 기다리다 지쳐 잠든 아이가 깨어날까 봐 까치발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봄을 기다리던 추운 어느 날 회의실 테이블 위에 월간『공군』이 눈에 들어온다. 20년 2월호 월간『공군』 500호 발행을 축하하는 내용과 월간『공군』의 역사가 담겨있었다. 1950년 4월 한국전쟁 (6.25 전쟁) 직전에 창간호를 선보인 공군지는 격변기를 거치며, 공군 순보, 코메트 등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발간되다가 1998년 9월 지금의 월간『공군』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군지는 단순한 월간지가 아니라 공군의 역사였고, 공군인의 영혼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기록이었다. 그렇게 지난 70년간의 공군인 중심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군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간행물을 디지털로 전환하여 아카이브에 탑재했다. 특히 1952년부터 발행되었던『코메트』는 공군의 사상과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다만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있어 원문을 읽을 수 없었고, 공군은 국한문 혼용체를 순 우리글로 풀어『오래된 미래 - 다시 읽는 코메트』를 재발행 하였다. 여러 병과와 관련된 글이 수록되어 있었고, 나와 관련된 정비 분야를 읽으면서 약 7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와 닮은 점들이 너무 많았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공군 항공정비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글을 보았다.
정비사의 활약은 그렇게 표면에 화려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기름에 밴 국산 정비복을 입고 자기가 맡은바 정비 임무에만 주야로 몰두하며 “어떻게 하면 사고 없이 전투를 수행하게 할 것인가”하는 것만 연구한다. 그들의 노력은 그것이 곧 전력이 되는 것이며 그들의 훌륭한 장비는 곧 다대한 전과를 거두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 오래된 미래 공군 정신의 원형탐구 p.394
우리 정비사들의 활약은 정말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군의 역사 속에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군의 한국전쟁 기록을 보아도 정비사에 관한 내용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월간『공군』에‘맨손으로 마주한 전쟁’이라는 내용이다.
물밀 듯 내려오는 북한군을 보며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비행부대는 정찰 활동과 함께 이른바 ‘맨손 폭격’을 감행한다. 정비사가 폭탄을 안고 연락기 후방석에 올라타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한 후 직접 폭탄을 떨어트리는 방식이다.
‘맨손’과 ‘폭격’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당시 조종사들의 비장한 결심 아래 목숨을 건 현실이 된다. - 월간『공군』 505호(20년 7월)
연락기에 탑승한 정비사는 누구일까?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기록물 그 어딘가에 남아있을 정비사의 이름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보듯 공은 조종사가 세우지만, 그 바탕에는 정비사들의 숨은 공로가 숨어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까지도 정비사들은 비행계획에 따라 최소 이륙 2시간 반 전부터 비행 전 점검을 하고, 함께 비행하고 내린 뒤 비행 후 점검까지 이상 없이 끝나야 퇴근한다. 전투기 정비사는 조종사를 태워서 보내면 되지만 헬리콥터의 경우 정비사도 함께 비행하기 때문에 더 고단한 하루가 된다.
특히. 이런 생활은 가족들에게 너무 많이 미안하다. 깊은 밤도 잠들었을 새벽 시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깨어날까 봐 까치발로 문을 열고 나가고, 혹시나 아빠가 일찍 올까 기다리다 지쳐 잠든 아이가 깨어날까 봐 까치발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러한 정비사의 삶을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며 정비사의 삶 속에서 생겨나는 희로애락 그 이야기를 남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