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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May 22. 2024

첫 촬영은 너무 어려워

제작 PD로 살아남기 10 :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모든 영상 제작이 그렇듯이, 

촬영을 준비하기 위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치면,

반드시 프로덕션의 첫 촬영날이 다가오곤 한다. 

(영화에서는 '크랭크인'이라고 표현한다.)


첫 촬영날은 해당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해당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첫 합을 맞추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촬영날이 되면 다른 어떤 날보다 묘한 긴장감이 현장에 감돈다.


프리 프로덕션을 하면서, 수많은 이야기와 회의를 하면서, 그전에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첫 촬영날은 으레 손발이 안 맞아 삐걱거리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첫 촬영날은 다른 어떤 날보다 현장에 가장 일찍 도착해서 현장의 분위기를 살핀다.

혹여나 준비가 안 된 게 있을 수도 있고, 

준비가 되었다 해도 갑자기 예상 못한 변수가 생겨서 문제가 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망의 첫 촬영날.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현장을 한 번 둘러본다. 

미술팀, 소품팀이 제일 먼저 와서 현장을 세팅한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다.

스태프들이 속속 도착한다. 

카메라팅, 조명팀, 그립팀, 연출부 등등 스태프들이 현장으로 모여든다.

현장을 지휘할 감독도 도착해서 첫 신을 어떻게 찍을 건지 이야기를 나눈다. 

첫 촬영이라 그런지 다들 묘하게 긴장과 들뜸이 공존한다.


아뿔싸.

배우 한 명이 헤메(헤어메이크업)을 받고 오는 길에 교통체증에 걸렸단다. 

배우를 조금 기다리던지, 아님 해당 배우가 없는 신을 먼저 찍어야만 한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연출부와 제작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감독과 논의한 후, 우선 배우를 좀 기다리는 걸로 결론이 났다.

배우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자신 때문에 기다린 스태프들이 미안해서인지 헐레벌떡 들어오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말한다.


이제 아무래도 그런 것쯤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스타트를 끊어야만 한다.

드디어,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며 카메라 롤이 돌아간다. 


감독의 신중한 모니터가 이어진다. 

한 컷 찍고, 컷! 또다시 한 컷 찍고, 컷!


...

큰일이다.

너무 오래 찍는다. 


오늘 찍어야 할 씬은 (심지어 첫날이라 여유롭게 짠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이 남았는데, 

감독은 첫 씬에서 벌써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고 있다. 

이대로라면 두어씬 찍고 끝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소품팀에서 첫 촬영에 쓸 소품 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이 꼬여서 나중에 온다고 한다.

당장 다음씬에 필요한 소품인데. 

사장님이 원망스럽다. 


그래. 손발을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 라며 나 자신을 달래 본다. 



첫 촬영은 너무 어렵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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