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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Sep 25. 2024

복싱 체험 수업을 가다

선빵을 때리려면 먼저 맞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에 대하여


집 근처에 복싱 체육관이 새로 오픈했다.

복싱을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왜냐면 복싱이라 하면 뭔가 거칠고 아프고, 어딘가 우락부락하고(?)

부상이 큰 운동이라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생겨 복싱 체육관의 1일 체험 그룹수업을 덜컥 신청했다.


새로 오픈한 체육관이라서 그런지 일단 시설은 합격이었다.

왜냐면 그전 살던 동네에서도 복싱 체육관들이 몇 개 있었는데, 거기는 생긴 지 좀 된 곳들이라 시설이 많이 노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복싱을 배우지 않았던 거는 시설 문제도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복싱 체육관은 가면 무조건 줄넘기만 시킨다더라.’

하는 이미 예전의 많은 사람들의 경고와 우려가 있던 터라, 나는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절로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우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줄넘기는 안 시키고 맨몸운동을 10분 정도 시켰다.

푸시업, 스쿼트, 크런치, 런지 같은 걸 하니까 차라리 줄넘기 보단 나았다.


-

드디어 10분의 웜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본 운동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나는 체험수업이다 보니까 본 클래스의 운동보다 복싱 자세에 대한 것들을 처음 가르쳐 주었는데,

스텝만 몇 번 밟는 데도 생각보다 숨이 차기 시작했다. (운동 부족…)


그렇게 복싱 자세와 스텝 연습 훈련만 한 20여분 정도하고 나서,

두 명씩 짝지어서 서로 스파링(?) 비슷한 걸 하기 시작했다.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체험수업 때 배운 복싱 펀치를 2분간 3라운드씩 반복하는 것이었다.

2분? 얼마 안 되네?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30초도 채 되지 않아 바로 접었다.

2분은 너무나 길고 길고 긴 시간이었다.

마치 플랭크를 할 때의 1분이 영겁의 시간인 것처럼.


2인씩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펀치를 내디뎌 글러브를 맞대는 경험은 내 인생 처음 겪어보는 신선함이었다.

그깟 글러브 맞대는 게 뭐가 신선하겠냐 싶지만,

글쎄, 나한테는 글러브가 서로 맞닿는 그 순간의 감정이 묘하게 다가왔다.


복싱 수업에서 같이 펀치를 질러서 서로가 서로의 글러브 최정점에 맞닿는 순간,

나는 내가 인생에서 내 펀치 하나 제대로 질러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남의 주먹을 맞기 싫어서, 이도저도 아니게 피하다 보니,

나는 내 주먹을 쭉 뻗는 걸 모르고 여태껏 인생을 살아 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맘 속에서는 흔히 말하는 ‘선빵’에 대한 동경과 야망은 항상 갖고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선빵을 해보거나 선빵을 성공시켜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만큼 나는 내 주먹을 꽁꽁 감춰두기만 했다.

남들은 저렇게 잘만 휘두르는데, 왜 나는 휘두르지 못했던 걸까.

아마도 나는 여태껏 맞는 걸 너무나 심하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싱 수업에서 내가 느낀 건, 사실 잘 때리려면 잘 맞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맞아야 맷집도 생기고, 잘 맞아야 공격 방식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선빵을 때리려면 내가 맞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상대방의 펀치가 나의 어디로 향하는지 끝까지 집중해서 지켜봐야,

내가 그걸 피해서, 혹은 그걸 막고서 정확히 내 펀치를 휘두를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하루짜리 복싱 체험 수업이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내 40년의 회피형  인생을 통째로 얻어맞은 듯했다.

그리고 내가 등록하기 겁내고 무서워했던 그 복싱수업도

사실은 나의 생각보다 무섭지 않음을 알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더 가벼워졌달까.


40년 만에 인생 운동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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