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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Aug 05. 2022

부모의 마음속에는 잔인한 '호랑이'가 산다

[레오의 실존육아] 불황이라는 호랑이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아래 글은 한국EAP협회에 원고청탁을 받아 작성한 원고의 초안을 재구성해 작성한 글입니다.

지난 6월29일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경찰이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조유나(10)양 가족의 차량인양 모습

호랑이는 엄마 그 자체입니다. 엄마는 내면세계 깊숙한 곳에 있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것이죠. 자녀살해 후 극단적 선택, 학대로 인한 아동 사망사건을 접할 때면 어김없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떠올리는 이유입니다. 최근 경제적 압박으로 자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극단적 선택을 한 소식을 접한 한 부모는 '나도 요즘 저런 심정이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경기 침체로 실질소득이 팍팍해지고, 은행에 갚아야 할 이자가 감당이 안 돼 상담을 받은 부모가 내뱉은 말이었죠.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잔혹한 호랑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호랑이에게 잡아먹힐뻔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동학대행위자를 신고하게 됐는데 다른 이웃이 신고자로 오해를 받아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치기를 부려 호기롭게 나서고 만 것이죠. 신고한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쫓아와 혼비백산 줄행랑을 친 기억은 아직도 섬뜩합니다. 후로 호랑이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꿈을 왕왕 꾸었습니다.


반대로 제가 호랑이가 된 흑역사가 있습니다. 딸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리모컨으로 발바닥을 세 차례나 때린 경험이죠. 그 날은 가족의 결혼식이었는데 식사를 하는 원탁에서 아빠가 자신을 때렸다며 아주 찰지게 이야기했습니다. 참회하듯 아이에게 사과하고,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단코 호랑이가 되지 않겠다고 맹약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습니다. 더 잔인한 호랑이가 깨어 날 여지는 여전합니다. 우리 자신을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지 않는 것은 의지의 힘도 있겠지만 상황의 힘이 더 큽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엄청난 빚과 그것을 독촉하는 세상에서 호랑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안전망 울타리 필요해

하버드대학교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은 “원시시대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순간 죽을 수도 있었다”며 인간은 심리적 안전을 형성하기 위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집단에 거부당할 경우 실존적 위기를 느낍니다. 나의 존재가 타인으로부터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신경 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거부되는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 소외, 무의미와 같은 실존적 위기를 맛보게 됩니다. 여기서 호랑이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아껴둔 떡을 호랑이에게 빼앗기는 모습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의지와 능력, 재산 등을 빼앗겨버린다면 호랑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부쩍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지인을 종종 만납니다. 비트코인으로 가족의 돈까지 날린 사람, 한 방을 꿈꾸며 강원랜드에서 퇴직금을 날린 사람, 영끌이라는 선택으로 하우스 푸어가 된 사람 등 이제 사회에 진출해 푸른 꿈을 꾸고 자식들을 아등바등 키울 시점에 자꾸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꼬드깁니다. 그 떡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건 여러분이 나름 해석해보세요.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가 주장한 5단계 욕구이론에서 가장 하위욕구는 ‘안전의 욕구’입니다. 이 욕구가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자기보호를 위해 가방에 식칼을 넣어 다니거나 뜨거운 여름에도 외투로 자신을 꽁꽁 싸매며 다니는 아이를 상담한 적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부부싸움, 방임과 학대, 부모의 알코올 의존증 등 안전하지 않은 가정환경은 아이들을 위협해 위축되고, 경직된 모습으로 만듭니다. 안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면 상위 욕구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게 매슬로우의 이론이죠. 가족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안전이 전재되어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정에서 '안전'을 느낄 수 없다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최고의 가족을 만들고, 더 높은 단계의 자아를 실현하는데 ‘안전’은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 호랑이를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자 의무입니다.


완벽한 안전은 없다

한 번은 강연에서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은 돈이 많으면 안전감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부자라고 안전감을 더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한 불안과 두려움은 불가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사회의 가장 작지만 중요한 체계인 가족을 세차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영향은 수년간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양산할 것이기에 대비가 필요합니다. 팬데믹 이후 늘어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추이는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호랑이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에 놓이게 되면 상황을 통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삶에서는 완벽한 안전은 없는 것이죠. 안전감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가정을 위한 3가지

‘안전’은 어떤 물질적인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튼튼한 자동차처럼 안전은 어떤 상태가 아니죠.  ‘안전’은 어떤 정지된 상태가 아닌 움직이는 에너지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후기 구석기 사회부터 인류는 오직 안전을 추구하며 진화해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호랑이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고개를 들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시선, 격려의 말 한마디, 존중하는 태도, 일상적 스킨십, 짧지만 온화한 대화입니다. 여기서 안전감이 잉태됩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최고의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따뜻한 대화를 펼쳐 나가야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미션이죠.

 

두 번째는 나 자신이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념은 혼자서 만들기 어렵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쓸모없게 느껴진다면 호랑이가 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호랑이도 오를 수 없는 나무 위로 도망가게 됩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엄마는 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가지고 있던 떡을 모두 호랑이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가족을 위해서 안팎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희생하지만 ‘변변찮은 월급’이라는 말을 듣거나 ‘집안이 왜 이 모양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울화통이 치밀어 폭발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가족으로서 소속감을 박탈하는 언행은 안전한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무조건적 긍정적 수용입니다.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모들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말할 때 어리다는 이유로 혼내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요즘 들어 머리가 더 커진 10살 첫째는 거침없이 아빠에 대한 불만을 쏟아 냅니다. 아이도 가족의 일원으로 어떤 말이든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가정사에 한 마디 할 수 있는 발언권은 아이의 소속감을 더 강화시키죠.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모습을 개선한다면 튼튼한 가족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서 우울과 죄책감, 소외, 무의미, 비애, 화, 분노, 두려움, 상실감 등 부정적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왔습니다.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로 과묵하게 삶을 지속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과 내면세계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안의 호랑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소박하고 따뜻한 대화가 필요하고, 이야기를 수용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떡이 없는데 호랑이가 나타나는 상황이 생겼다면 꼭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레오(본명 문선종)선생님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9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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