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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이재 Aug 26. 2022

MBTI의 치명적인 오류

[강점멘토레오의 실존육아] 내 성격 '부모 탓'이 아니다.출처 : 베이비

대학시절 MBTI나 DISC 유형검사와 같은 내용으로 수업한 경험이 있다. 사범대학이라는 학당에서 강사를 모셔와 일회용 교육을 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저 친구는 D 유형이야’ ‘저 친구는 C유형이야’라며 마치 혈액형별 성격을 이야기하듯 인간의 무한한 내면의 세계에 스스로 장벽을 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불편했다. 당시에도 인기가 대단했다. MBTI 자격증을 따려고 돈을 아끼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 시간에 나는 프로이트와 칼 융의 책을 꺼내 들고 매일 아침 꾸었던 꿈을 그리고, 쓰고, 무의식의 바닥에 닻을 내릴 요량으로 자아의 내면을 탐구했다. 



◇ 즉석자판기 MBTI

속성으로 한 인간의 성격을 엑스레이 찍듯 보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MBTI는 마치 인생 네 컷 즉석 자판기처럼 16가지의 성격유형 중 4개의 유형을 찰칵찰칵 담아준다.      


MBTI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 Briggs Type Indicator)의 줄임말로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 Briggs)와 그녀의 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 Myers)가 분석심리학의 선구자 칼 구스타프 융의 초기 분석심리학 모델을 바탕으로 1944년에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다. 비 심리학자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자벨은 소설가였다. 인종차별적 소설의 내용과 그의 언행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징병제로 발생한 인력 부족으로 군수 공업의 수요가 증가했다. 남성 노동자가 지배적이던 산업계에 여성이 진출하게 되면서 자신의 성격 유형을 구별해 각자 적합한 직무를 찾도록 할 목적으로 1944년에 MBTI가 개발됐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조직의 인사행정 업무에서 적절한 부서 배치와 직무 개발을 위해 어떤 유형인지 참고하기도 한다. 한 개인의 성격이 노동력으로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지 ‘교환가치’의 요소로 읽히고 있다. 이런 시장에 잠식당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것이 두렵고 불편해 어떤 종류의 유형검사든 그토록 몸서리를 쳤는지 모른다. 천 원을 넣어서 딱 거기에 맞는 음료를 뽑듯 즉석 자판기처럼 뽑히고 소모되는 인간의 군상을 말이다.     


◇ 잘못되면 부모 탓

거의 매일 '오은영 박사'의 콘텐츠를 보고 있다. ⓒ오은영박사 블로그

오은영 박사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그가 출연한 방송의 클립 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보고 있자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런데 간혹 '어릴 적 우리 부모가 이래서 지금 내 모양이 이렇다'라는 기제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명론적인 생각이다. 부모의 양육이 지금의 나를 결정했다는 믿음이다.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부모 탓'이라는 논리다. 작금의 나를 부정하며 모든 탓을 부모에게 돌리는 것은 오은영 박사가 의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자녀가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며 '어떻게 키웠길래? 지금 내가 이 모양이야!'라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MBTI도 그렇다. 지금 당신의 성격유형이 이러니 이런 일을 하라고 한다면 어떤가? 혹은 당신 유형은 이 유형과 맞지 않으니 저 사람과 팀원이 되지 말라고 한다면? 


학부 수업으로 인간 행동과 사회환경을 가르치던 교수가 스친다. “모유 수유를 충분히 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구강적인 결핍이 있어서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교수님 저는 엄마 젖꼭지가 피날 때까지 모유를 먹었는데 왜 담배를 태우죠?"라고 말했다. 그때는 혈기왕성해 하루 두 갑을 피워댈 때였다.   


우리가 부모에 의해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더불어 부모들도 양육태도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내가 너무 사랑을 많이 줘서 버릇없어지면 어쩌지?'라며 일부러 절제되고, 엄한 훈육을 하는 부모를 만났다. 학교에서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는데 '선생님 그건 그 아이의 몫이에요. 퇴학을 당하던 뭘 하던 학교랑 아이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라며 모든 문제를 회피하는 부모도 만났다. '내가 이렇게 키우면 아이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적극적인 육아를 방해한다. 사랑을 줄 수 있을 때 담뿍 줘야한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쓸데없는 유형검사 따위로 특정해 단정 짓고, 옳지 않는 육아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한다.


부모의 특정한 양육태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배적이지 않다. 인간을 결정하는 요소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지금도 결정되지 않았다. 더불어 환경과 상황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어떤 환경에서는 아주 외향적이다.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인지’와 사회적 ‘관계’에서는 단세포적인 성격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아!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생각한 경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아이의 성격유형은 희어지고, 끊어지고, 퇴적되는 지층과도 같다. 그 결은 결정되고 잘 변하지 않지만 어떤 힘에 의해 끊어지고, 화산이 폭발하듯 우리는 언젠가 변화될 수 있는 사건들이 차고 넘친다.     


◇ 묻지 마! MBTI

MBTI가 유행이다 보니 간혹 나의 MBTI의 유형을 묻는 학생들이 많다. 비밀이라고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나는 나 스스로 어떤 존재든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부모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아이의 성향을 최소 10살 이전에는 특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정 짓기보다 '이런 것들을 선호하는구나' 재미로 흘려들으면 좋을 일이다. 참고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혈액형이 B형인 줄 알았지만 고등학생 때 A형이라는 사실을 알아 큰 충격에 빠졌다. 남성과 여성, 혈액형 등 분명 정해진 것은 있다. 하지만 우리 내면세계는 숫자로 파악하고, 기호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 칼럼은 베이비뉴스에 게재 된 글입니다.


*강점멘토 레오(본명 문선종)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8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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