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이재 Aug 31. 2022

셋째 입양, 질투하는 둘째

[강점멘토레오의 실존육아] 애완동물에서 반려종으로

첫째 딸 서율은 자신의 생일선물을 기념해서 꼭 키워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대 안 돼!” 철벽을 치는 아빠를 향해 두 눈을 치켜뜨며 강경한 의지를 보였다. 심지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기도 했다. 그 소리에 동생 지온도 가세했다. 키우게 되면 청소도 하고, 밥도 챙겨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단, 똥은 아빠가 치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 아웅다웅 싸우던 자매가 의기투합하는 모습에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그런 의지만으로 생명을 키울 수 없다고 마음을 굳혔다.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예쁘냐며 넌지시 아이들의 편에 섰다.      


◇ 셋째의 탄생

둘째의 머리 위로 날아든 오렌지. ⓒ문선종

둘째의 친구 가족과 앵무새 카페를 갔다. 자리에 앉자 점원이 다가와 앵무새의 특징과 다룰 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설명이 끝난 후 형형색색의 앵무새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먹이를 먹으려고 몰려드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서로 먹겠다며 서로 부리로 쪼는 모습에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동물을 싫어하는 나도 자꾸만 눈이 갔다. 유독 한 녀석이 짓궂은 장난을 걸며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음료 빨대를 빼앗아 풍차처럼 공중에 붕붕 돌리며 무술을 하기도 하고, 머리 위로 올라가 벌레를 잡아주는 듯 장난을 걸어왔다.  

   

“얘 이름이 뭐예요?”

첫째가 점원에게 물었다.

“응. 이 녀석은 오렌지라는 녀석인데. 색도 예쁘고, 사람에게도 잘 다가와서 여기에서 인기가 엄청 많아.”

점원은 앵무새를 능숙하게 다루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오렌지의 빛깔이다. 통통 튀는 모습이 오렌지의 상큼함처럼 퍼지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게도 다가와 빨대를 이리저리 흔들며 같이 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잡아보라고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 보고 있자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먹는 오렌지가 아닌 앵무새 오렌지가 깊게 새겨진 듯했다.    

 

그로부터 2주 뒤 오렌지를 보러 가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카페에서 첫째가 작심하듯 말했다. 오렌지를 키워야겠다고 말이다. 결사반대였지만 아내를 비롯해 아이들은 한 편이 되어있었다. 키우게 해 준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다는 말이 아내의 지갑을 열게 했다. 그렇게 앵무새를 집으로 들였다. 3개월 전의 이야기다.      


“너희들! 정말 책임져야 해! 너희 동생으로 알라고, 이건 분양이 아니고, 입양이야 입양!”     


정말 그렇다. 20년을 산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 20년이면 첫째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시간이다. 작고 여린 새가 우리 가족의 틈으로 들어왔다. 사람으로 따지면 3개월 정도의 아기다. 앵무새의 성별은 크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집에 나를 빼고 모두 여자라 내심 남자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다녀갔다.  

    

◇ ‘애완동물’에서 ‘반려종’으로

7년 전 일이다. 여름 휴양지에서 그늘 좋고, 전망 좋은 나무 아래 자리를 두고 먼저 맡았다며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먼저 왔다고 주장하며 실랑이를 벌이다 강아지를 동반한 젊은 부부 쪽에서 “우리 아이 뜨겁잖아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 질세라 “개가 사람보다 중요해요? 그럼 우리 아이들은요!”라며 더 언성을 높였다. 경찰이 와서야 고성이 멈출 수 있었다. 강아지를 우리 아이라고 하는 모습이 그때는 참 생경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이라는 상위 개념을 창안해 2003년 ‘반려종 선언문’을 선언한 바 있다. ‘애완’동물이 ‘반려’동물이 되었고, 이제는 ‘반려종(種)’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는 인간은 동물과 상호구성적인 역사를 구성하며 함께 살아온 존재로서 ‘타자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타자들과 책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중요한 선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려종을 키우지 않는 나로서는 글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 ‘관계’에 대한 느낌을 체현하게 해 준 것이 앵무새 입양 사건이다.    

 

◇ 셋째를 질투하는 둘째의 사유

사실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와 깊은 관계를 가져본 적 없다. 일곱 살 때 멋진 구두를 자랑할 요량으로 동네를 걷고 있을 때 커다란 개가 따라오지 않았다면 강아지를 좋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에 대한 두려움을 내심 갖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본 수많은 동물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말한 돌고래에 대해서도 관심 없었다.      

동물에 관심을 가진 역사가 없던 내게 작은 존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렌지를 집으로 들이고 나니 시간이 갈수록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몸을 부풀릴 때가 그랬다. 새장에 너무 오래 있다고 생각되면 그를 꺼내 놓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의 어깨로 올라와 나의 안경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녀석과 말을 주고받을 수 없지만 작은 새 한 마리가 나에게 중요한 타자가 되기 위해 반복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빠져들었다. 꺼내 달라고 지저귀는 소리에 문뜩 고개를 돌리며 서로의 존재를 조금씩 의식할 즈음 여섯 살 둘째가 말했다. 


“아빠는 오렌지만 좋아하고, 나는 안 좋아하고...”   

  

질투할 깜냥도 안 되는 작은 새에 질투하는 둘째의 마음에 탄복했다. 아빠가 자기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줬는데 오렌지가 다 빼앗아간 기분이 들었단다. 오렌지가 갑자기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거나 진짜 자기 동생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오렌지가 셋째라거나 입양했다는 말은 그만큼 책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난 삼아한 말이었다. 하지만 작은 새는 하나의 종(種)으로서 타자성을 가진 진짜 존재가 됐다. 둘째가 부린 마법이었다.      

 

후기 구석기시대 인간의 뇌는 현재 인간의 사유방식과 일치한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의 ‘야생의 사고’ 나 인류 최초의 신이었던 ‘곰’과 같이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하나의 종이자 자연의 거대한 힘이라 여겼다. ‘타자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존재가 바로 둘째였다. 원시사회를 영원회기한 원형이 내 앞에 서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 어린이를 찬양하라!

오렌지를 입양하러 갔을 때 그를 꼭 껴안고 있었던 초등 5학년 여자아이가 아직 눈에 선하다. 매일 오렌지를 보러 카페에 들르는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 우리가 입양한 날에도 오렌지와 함께 있었다. 입양 소식에 슬퍼했지만 오렌지에게 개인기가 있다며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눈시울을 붉히며 그러면서 이 말을 남겼다.  

  

“오렌지 정말 잘 키워주세요.”     


그 아이에게 오렌지는 타자성을 넘어선 것이었다. 어린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말은 진리다. 어른은 무조건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동물을 하나의 존재로서 반려종이라는 타자로서 생각하는 야생의 사고를 가진 어린이야말로 실존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정신 발달의 종착역을 ‘어린아이’라고 말한 니체와 ‘어린아이’처럼 그리는데 평생을 바쳤다는 피카소를 비롯해 수많은 성현과 예술가들이 그토록 어린아이의 마음을 찬양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위 칼럼은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강점멘토 레오(본명 문선종)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8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