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토록 동생을 바랐던 나였다. 동생에 대한 갈망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동생을 낳아달라고 했던 그 말은 비수가 되어 엄마의 가슴에 꽂혔다는 사실을 20대가 되어서 알았다. 24년을 외동으로 살아온 나에게도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세월에 익어갈수록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 이유가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살다 보면 알 수 없는 혹은 모르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된다. 어린이들은 탐정이다. 어른들이 꽁꽁 숨겨둔 진실을 무의식으로 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알아낸다. 나는 동생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동생 타령을 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지도 않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한 존재의 부재는 어항을 뛰쳐나온 금붕어처럼 선홍빛의 팔딱이는 몸부림처럼 늘 뛰고 있었다.
◇ 당신은 친구 없어?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단 둘이 오붓하게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다 아내가 질문을 툭 내뱉었다.
“당신은 친구 없어?”
가정과 일에 충실하며 살았다. 동창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지 않다 보니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없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기 딱 좋은 질문이었다. 돌이켜보니 삶의 궤적에는 친구보다는 유독 동생들이 많았다. 아내도 나보다 7살 어린 동생이다. 어릴 적 엄마는 왜 동생들하고 노는 나를 늘 못 마땅해했다. 나는 왜 유독 동생을 좋아했을까? 동생이 없다는 나의 결핍은 나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질문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 죄책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둘째의 얼굴에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옆집으로 이사 온 승욱이가 떠올랐다. ⓒ문선종
나는 수능을 두 번 봤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다. 그들은 나를 깍듯이 형님, 오빠로 대우했다. 그게 참 좋았다.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절이다. 어릴 적 늘 엄마가 못 마땅해하며 한 말이 떠오른다.
“넌 왜 허구한 날 너보다 어린 애들하고 노냐?”
강물처럼 흐르는 인생이지만 굽이쳐 돌아보니 소름이 돋았다. 나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보다 어린 존재들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니다. 깊이 개입하려고 했었다. 동네 골목에서도 코흘리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줬다. 동생들에게 뭔가 퍼주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사촌동생들이 집에 놀러 오면 아끼는 게임기며 장난감을 줬을 정도였다. 커서는 명절 귀향길 차비가 없는 후배들에게 돈을 쥐어 줬었고, 인력시장에 나가 돈을 벌면 어리고 고달픈 동생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그들을 위로했다. 참 많은 술을 마셨던 시절이었다. 공무원이나 되자고 간 대학의 생활이 어쩌다 증여적인 삶으로 흘렀다. 학교 수업보다 비영리민간단체에 활동하면서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4년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상담을 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에 이사 온 5살 승욱이가 얼마나 예뻤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매일 아침 그 아이의 집 앞을 서성였다. 나의 둘째는 점점 그 아이를 닮아 갔고, 마치 승욱이의 집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초등학생 때의 내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는 남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동생의 죽음은 내 삶의 거대한 복선이었다. 내가 갈망한 존재의 결핍은 삶을 살아가면서 커다란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짜장 라면을 먹는데 말이다. “동생이 살아있었다면 나처럼 참 좋아했겠지?” 그냥 배고파서 삶아 먹은 짜장 라면이 유독 맛있었다. 울컥 눈물이 나왔다.
◇ 오직 진실을 말하는 용기 동생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나의 동생이 이미 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아서 위로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아이들에게 적절한 시간이 되면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고, 자유의지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였다. 감쪽같이 숨겨졌던 사실에서 운명이라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억압된 콤플렉스가 있다거나 절대 비밀로 하고 싶은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직면해야 한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고 반드시 질문한다. 특히 누군가의 부재나 죽음이 가장 큰 물음이다. 스스로의 결핍을 알아차리고 극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엄마는 왜 엄마가 없어?”
9살 때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내에게 첫째 딸이 7살 즈음에 한 질문이다. 그 물음에 대해 아내는 진실을 말했다. 그게 진짜 어른의 자세다. 얼버무리고 퉁치고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실을 호도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단언컨대 아이들이 품은 의문을 사실로서 해갈시키지 않는다면 내면세계의 감각들이 작동하게 된다.
“아빠는 어릴 때 방학숙제 잘해갔어?”라고 물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 아빠는 만날 숙제 안 해가서 선생님들에게 두들겨 맞았어.”
◇ 무의식은 모든 것을 안다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말, 행동은 나의 무의식이 그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코 가려질 수 없는 진실은 엄마의 마음속에 잠재되면서 억압에 억압을 거듭하다 폭발했다. 그 파편이 아이들에게 튀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귀신 같이 무의식으로 안다.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아이들의 물음에 진실을 말하자. 말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면 적절한 시점에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들은 몰라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